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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설화

불교 설화 : 정조대왕의 애절한 효심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10. 25.

불교설화 - 정조대왕의 효심

주제 : 효선

국가 : 한국

시대 : 조선

지역 : 경기도

참고문헌 : 한국불교전설99

첨부자료 mp3 :

746 불교설화 - 정조대왕의 효심.mp3
4.18MB

 

 

 

1. 정조대왕의 애절한 효심에 얽힌 불교설화

 

불교 설화 : 정조대왕의 애절한 효심

 

백성들에게는 효를 중시하는 어진 임금으로 알려졌지만, 정조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22대 조선 임금인 정조에게는 슬프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향한 깊은 그리움이 늘 가슴을 무겁게 했기 때문입니다.

정조가 아직 열한 살 왕세손이었을 때, 할아버지 영조의 엄한 명령이 궁궐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어서 저 아이를 뒤주에 가두라!" 어린 정조는 애타게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영조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영조는 뒤주에 못질을 하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올리게 한 뒤, 아무도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친히 붓을 들어 세자를 폐하고 신분을 강등시키는 비극적인 교서를 내렸습니다. 결국 8일 뒤, 차가운 뒤주 속에서 겨우 스물여덟이던 사도세자는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이 끔찍한 기억은 정조의 가슴에서 한시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아버지의 영혼이 이승을 떠돌고 있을 것만 같아 밤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부디 아버지께서 저승에서라도 극락왕생하셨으면 좋겠다. 내가 꼭 도와드려야지.' 정조는 깊은 효심으로 결심하게 됩니다. 양주 배봉산에 모셔져 있던 아버지 묘를 절 가까이로 옮겨, 날마다 기도로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조는 새롭게 묘를 쓰고, 그 주변에 절을 지을 적당한 장소를 찾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정조는 보경 스님에게서 부모은중경에 관한 깊고도 감동적인 설법을 들었습니다. "불가에서는 부모님의 은혜를 열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저를 잉태하시고 지켜주신 은혜, 둘째는 고생을 무릅쓰고 낳아주신 은혜, 셋째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길러주신 은혜, 넷째는 좋은 것은 자식에게 주고, 힘든 것은 부모가 감당하시는 은혜, 다섯째는 자식에게 마른자리를 내어주고, 본인은 축축한 자리에 누우시는 은혜지요."

 

설법을 끝까지 들은 정조는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반드시 절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정조는 먼저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의 화산으로 아버지의 묘를 정성껏 옮겼습니다. 이어서 그 근처 절, 양시터(신라 문성왕 16년에 창건된 사찰)에 부왕의 명복을 비는 능사를 짓도록 명합니다.

 

정조는 보경 스님을 전국의 시주를 맡는 팔도도화주로 임명했습니다. 사도세자의 원통함을 달래기 위해 절을 짓는다는 소식에 백성들도 저마다 힘을 보탰습니다. 보경 스님은 백성들의 정성이 모인 8만 냥의 시주금으로 4년에 걸쳐 장엄한 절을 완공했습니다.

 

낙성식을 앞둔 밤, 정조는 꿈에서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힘차게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꿈이 상서롭다고 여긴 정조는 낙성식 당일 친히 절에 방문해,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로 짓기로 했습니다. 이 용주사가 바로 오늘날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에 자리한 조계종 제2교구 본사입니다.

 

정조는 자신의 효심을 일깨워주고 용주사 건립에 큰 힘이 된 보경 스님에게 절의 관리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손꼽히는 화공을 찾아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기게 했고, 이 그림을 경판으로 만들어 용주사에 모셨습니다. 이 경판들은 지금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밖에도 명나라 금동 향로, 다양한 그림, 용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청동 향로 등을 용주사에 하사하며, 정조는 아버지를 향한 깊은 효심을 아낌없이 표현했습니다.

임금은 능이 가까운 수원에 웅장한 화성을 쌓고, 도시를 소경이라는 작은 수도로 승격시켰습니다. 이는 비명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정조는 기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용주사를 자주 찾아 아버지의 넋을 달랬습니다.

 

어느 초여름 날, 정조가 능을 참배하던 중 능 앞에 서 있는 소나무에 송충이가 잔뜩 붙어 나무들이 병드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임금은 혼잣말로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허허, 이게 웬일인가. 내 땅에 사는 송충이들이 어찌 임금인 내 아버지의 묘 앞 소나무 잎까지 갉아먹는단 말이냐? 아버지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것만도 가슴 아픈데, 너희까지 이리 괴롭히니 더욱 참기 어렵구나."

정조는 이에 직접 소나무 가지에 붙은 송충이 한 마리를 잡아 어금니로 깨물어 죽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뒤로 이 일대에서 송충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용주사 주변과 융건릉 일대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특히 용주사 근처의 회양목은 천연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가을날, 임금이 용주사로 향하는 길에 수원 근처 군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높은 고갯마루를 오르느라 가마가 느릿느릿 움직이자, 임금은 답답한 마음에 소리쳤습니다.

"여봐라, 어찌 이렇게 더디냐?"

그러자 시종이 아뢰었습니다.

"폐하, 언덕을 올라가느라 걸음이 더딜 뿐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깊었던 정조의 마음을 헤아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 '지지대'라고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첨부자료 : <한국불교전설99> [네이버 지식백과] 정조대왕의 효심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2. 정조대왕의 애절한 효심: 핵심 키워드

 

📚 핵심 키워드

  • 정조 (King Jeongjo): 조선의 제22대 임금으로, 학문과 정치를 개혁하며 애민 정신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특히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깊은 효심으로 유명합니다.
  • 사도세자 (Crown Prince Sado): 정조의 아버지로, 할아버지 영조와의 갈등 끝에 뒤주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정조에게는 평생의 한과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 효심 (Filial Piety): 부모를 공경하고 보살피는 지극한 마음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용주사를 창건하고 수원 화성을 쌓는 등 효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 용주사 (Yongjusa Temple):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사찰입니다. 이름은 정조가 낙성식 전날 꾼 '용이 여의주를 무는 꿈'에서 유래했습니다.
  • 부모은중경 (Sutra on the Profundity of Parental Grace): 부모의 열 가지 큰 은혜를 상세히 설명하는 불교 경전입니다. 정조는 이 설법을 듣고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더욱 굳건히 다졌습니다.

 

3. 정조대왕의 애절한 효심 : 가장중요한 포인트 및 내용요약

✨ 가장 중요한 포인트

주제: "효심의 상징, 용주사 창건과 『부모은중경』 봉안"

 

📚 내용 요약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평생 깊은 그리움과 아픔을 간직했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정조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간절한 효심을 품었습니다. 그는 보경 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아버지 묘소를 화성 화산으로 옮기고 그 옆에 절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백성들의 정성 어린 시주로 4년 만에 절이 완공되었고, 정조는 꿈속에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용주사'라 지었습니다. 그는 용주사에 『부모은중경』 경판과 다양한 예술품을 하사하며 아버지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또한 수원 화성을 쌓아 도시를 소경으로 승격시키고, 능을 자주 찾아 돌보았습니다. 심지어 능 앞 소나무의 송충이를 직접 잡거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때문에 가마가 느리게 가는 것을 답답해하여 '지지대'라는 이름까지 남기는 등 지극한 효심을 보였습니다. 정조대왕의 효심은 백성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애절한 사랑은 용주사와 화성 곳곳에 현재까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 내용 요약 번역

English: King Jeongjo carried deep longing and sorrow throughout his life due to the tragic death of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For his father, who died in a rice chest by order of his grandfather King Yeongjo during Jeongjo's childhood, Jeongjo harbored fervent filial piety, wishing for his father's rebirth in the Pure Land. Deeply moved by Monk Bogyeong's sermon on the Sutra of Parental Grace, he decided to move his father's tomb to Hwasan in Hwaseong and build a temple beside it. With the sincere donations of the people, the temple was completed in four years. After dreaming of a dragon ascending with a wish-fulfilling pearl, Jeongjo named the temple 'Yongjusa'. He bestowed the Sutra of Parental Grace woodblocks and various artworks upon Yongjusa to console his father's spirit. Furthermore, he built Hwaseong Fortress, elevating the city to a minor capital, and frequently visited his father's tomb. His profound filial piety was evident in acts such as personally removing pine caterpillars from trees near the tomb and naming a mountain pass 'Jijidae' out of impatience with his palanquin's slow pace due to his longing for his father. King Jeongjo's filial devotion deeply moved his people, and his poignant love for his father continues to resonate in Yongjusa and throughout Hwaseong to this day.

Chinese (简体中文): 正祖大王因父亲思悼世子的悲剧性离世,一生都怀着深深的思念和悲痛。年幼时,父亲奉英祖大王之命被困米柜而亡,正祖心怀祈愿父亲往生极乐净土的孝心。他被宝镜大师讲解的《父母恩重经》深深感动,决定将父亲的墓地迁至华城华山,并在旁边修建寺庙。在百姓们真诚的捐助下,寺庙历时四年竣工。正祖梦见一条龙口衔如意珠升天,于是将寺庙命名为“龙珠寺”。他在龙珠寺供奉了《父母恩重经》的经板和各种艺术品,以慰藉父亲的亡魂。此外,他还修建了水原华城,将城市升级为小京,并经常前往墓地拜谒。甚至亲自捕捉墓前松树上的松毛虫,并因思念父亲而嫌轿子行进缓慢,留下了“迟迟台”的地名,展现了他极致的孝心。正祖大王对父亲的孝心深深感动了百姓,他对父亲的深切挚爱至今仍在龙珠寺和华城各处回荡。

Japanese (日本語): 正祖大王は、父である思悼世子の悲劇的な死により、生涯深い懐かしさと悲痛を抱えていました。幼い頃、祖父英祖の命で米櫃に閉じ込められ亡くなった父のために、正祖は極楽往生を願う切なる孝心を抱きました。彼は宝鏡僧侶から『父母恩重経』の説法を聞いて深く感動し、父の墓所を華城の華山に移し、その隣に寺を建てることを決意しました。民衆の誠実な寄付により、4年で寺が完成し、正祖は夢の中で龍が如意珠をくわえて昇天するのを見て、寺を「龍珠寺」と名付けました。彼は龍珠寺に『父母恩重経』の経板と様々な美術品を下賜し、父の魂を慰めました。また、水原華城を築いて都市を小京に昇格させ、陵を頻繁に訪れて世話をしました。さらに、陵前の松の木の松虫を自ら取り除いたり、父への懐かしさゆえに駕籠の進みが遅いことをもどかしく思い、「遅々台(ジジデ)」という地名まで残すなど、至極の孝心を示しました。正祖大王の孝心は民衆に深い感動を与え、父への切ない愛は龍珠寺と華城の各地に今も息づいています。


4. 불교 설화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

이 정조대왕의 불교 설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현대인의 삶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교훈과 시사점을 담고 있습니다.

  • 배울 점:
    • 진정한 효의 가치: 정조대왕의 효심은 단순한 도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 영혼의 안식과 극락왕생을 진심으로 염원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형식적인 효도를 넘어, 마음 깊이 상대를 이해하고 보살피려는 노력이 진정한 효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 고난과 아픔의 승화: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을, 용주사 창건과 수원 화성 건설이라는 거대한 문화유산을 만들어내는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개인의 고통이 좌절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사회적 가치와 공익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 리더의 공감과 진정성: 백성들이 정조의 효심에 공감하여 용주사 건립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이는 리더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가치관이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됨을 시사합니다.
  • 시사점:
    • 관계 회복의 중요성: 가족 관계의 해체와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정조의 효심은 가족 간의 사랑과 유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입니다.
    • 문화적 유산의 가치: 개인적인 아픔을 계기로 창조된 용주사와 수원 화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이는 어떤 행위가 단순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유산으로 남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현대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
    • 내면의 성찰과 치유: 정조가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아버지의 넋을 생각했듯, 현대인도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과거의 상처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감정의 현명한 조절과 활용: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단순한 감정 표출로 끝내지 않고, 이를 건설적인 행동(용주사 창건, 화성 건설)으로 전환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우리도 감정을 지혜롭게 다스리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말해줍니다.
    • 공감 능력의 확장: 정조가 백성의 삶에 귀 기울였듯,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 공동체적 가치 회복: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를 넘어, 정조의 효심처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도모하는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보살피고 공감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 지속 가능한 유산 창조: 개인의 업적을 넘어, 후대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유산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삶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도연님께서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있으시니 이 부분은 특히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실 것 같아요. 😌)

 

 


5. 불교 설화 : 정조대왕의 애절한 효심 AI번역

불교 설화 : 정조대왕의 애절한 효심

Buddhist Narrative: The Heartfelt Filial Piety of King Jeongjo 

佛敎說話: 正祖大王哀切な孝心 (Buddhism Story: The Sorrowful Filial Piety of King Jeongjo) 

仏教説話:正祖大王の切ない孝心 (Buddhist Tale: King Jeongjo's Poignant Filial Piety)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백성들에게는 효를 중시하는 어진 임금으로 알려졌지만, 정조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22대 조선 임금인 정조에게는 슬프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향한 깊은 그리움이 늘 가슴을 무겁게 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Though known to his people as a benevolent king who valued filial piety, King Jeongjo always carried a deep sorrow in his heart. As the 22nd monarch of Joseon, he was constantly burdened by a profound longing for his father, Crown Prince Jangheon (Sado), who had departed this world under tragic circumstances.

Chinese: 尽管在百姓心中,正祖是一位重视孝道的仁君,但他内心深处始终藏着一份痛苦。作为朝鲜王朝的第22代君主,正祖对悲惨离世的父亲——庄献世子(思悼世子)的深切思念,总让他心头沉重。

Japanese: 民衆には孝を重んじる慈悲深い王として知られていましたが、正祖の心の一隅には常に悲しみが宿っていました。第22代朝鮮国王である正祖にとって、悲劇的に世を去った父、荘献世子(思悼世子)への深い慕情が、常にその胸を重くしていたからです。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정조가 아직 열한 살 왕세손이었을 때, 할아버지 영조의 엄한 명령이 궁궐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어서 저 아이를 뒤주에 가두라!" 어린 정조는 애타게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영조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영조는 뒤주에 못질을 하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올리게 한 뒤, 아무도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친히 붓을 들어 세자를 폐하고 신분을 강등시키는 비극적인 교서를 내렸습니다. 결국 8일 뒤, 차가운 뒤주 속에서 겨우 스물여덟이던 사도세자는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When Jeongjo was just an eleven-year-old Grand Prince, his grandfather King Yeongjo's stern command shook the entire palace. "Confine that child in the rice chest at once!" Young Jeongjo desperately pleaded for his father's forgiveness, but Yeongjo remained unyielding. King Yeongjo had the rice chest nailed shut and a large stone placed on top, then personally drafted a tragic decree, dethroning the Crown Prince and demoting his status, to ensure no one dared defy his order. Eventually, eight days later, Crown Prince Sado, a mere twenty-eight years old, closed his eyes forever inside the cold rice chest.

Chinese: 正祖还是一个11岁的王世孙时,祖父英祖的严厉命令震惊了整个宫廷。“速将那孩子囚禁于米柜之中!”年幼的正祖苦苦哀求祖父赦免父亲,但英祖始终不肯让步。英祖命人在米柜上钉钉子,并在其上放置巨石,随后亲自提笔颁布了废黜世子、降其身份的悲惨诏书,以防任何人违抗他的命令。最终,八天之后,年仅二十八岁的思悼世子在冰冷的米柜中闭上了双眼。

Japanese: 正祖がまだ11歳の王世孫だった頃、祖父英祖の厳命が宮廷全体を揺るがしました。「早くあの者を米櫃に閉じ込めよ!」幼い正祖は必死に父の許しを請いましたが、英祖は最後まで意志を曲げませんでした。英祖は米櫃に釘を打ち付け、その上に大きな石を置かせた後、誰も自分の命令に逆らえないよう、自ら筆を取り、世子を廃し身分を降格させる悲劇的な教書を出しました。結局8日後、冷たい米櫃の中でわずか28歳だった思悼世子は目を閉じ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이 끔찍한 기억은 정조의 가슴에서 한시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아버지의 영혼이 이승을 떠돌고 있을 것만 같아 밤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부디 아버지께서 저승에서라도 극락왕생하셨으면 좋겠다. 내가 꼭 도와드려야지.' 정조는 깊은 효심으로 결심하게 됩니다. 양주 배봉산에 모셔져 있던 아버지 묘를 절 가까이로 옮겨, 날마다 기도로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조는 새롭게 묘를 쓰고, 그 주변에 절을 지을 적당한 장소를 찾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This terrible memory never left Jeongjo's heart for a moment, and he often lost sleep, fearing his father's spirit might be wandering in this world. 'May my father truly achieve rebirth in the Pure Land, even in the afterlife. I must help him.' Jeongjo made a resolute decision out of deep filial piety. He planned to move his father's tomb, which was located on Baebongsan in Yangju, closer to a temple to offer comfort through daily prayers. To do this, Jeongjo began searching for a suitable site to construct a new tomb and a temple nearby.

Chinese: 这段可怕的记忆从未从正祖心中消逝,他常常夜不能寐,总觉得父亲的亡魂可能仍在人间游荡。“愿父亲在冥界也能往生极乐净土。我一定要帮助他。”正祖怀着深厚的孝心做出了这个决定。他计划将父亲原本安葬在杨州杯峰山的墓地,迁至靠近寺庙的地方,以便每日以祈祷慰藉父亲。为此,正祖开始寻找一个合适的地点来建造新墓和一座寺庙。

Japanese: この恐ろしい記憶は正祖の胸から片時も消えることはなく、父の魂がこの世をさまよ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案じ、夜も眠れませんでした。「どうか父上があの世ででも極楽往生されますように。私が必ずお助けしなければ。」正祖は深い孝心から決心します。楊州の拝峯山に安置されていた父の墓を寺の近くに移し、日々の祈りで慰めようと考えたのです。このため、正祖は新たに墓を建て、その周辺に寺を建てるのに適した場所を探し始めます。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어느 날, 정조는 보경 스님에게서 『부모은중경』에 관한 깊고도 감동적인 설법을 들었습니다. "불가에서는 부모님의 은혜를 열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저를 잉태하시고 지켜주신 은혜, 둘째는 고생을 무릅쓰고 낳아주신 은혜, 셋째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길러주신 은혜, 넷째는 좋은 것은 자식에게 주고, 힘든 것은 부모가 감당하시는 은혜, 다섯째는 자식에게 마른자리를 내어주고, 본인은 축축한 자리에 누우시는 은혜지요…."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One day, Jeongjo listened to a profound and moving sermon by Monk Bogyeong about the 『Sutra on the Profundity of Parental Grace』. "In Buddhism, the grace of parents is explained in ten ways. First, the grace of conceiving and protecting me; second, the grace of giving birth despite hardship; third, the grace of raising me through all kinds of difficulties; fourth, the grace of giving good things to children and enduring hardships themselves; and fifth, the grace of giving the dry spot to the child while lying on the damp one themselves…."

Chinese: 某天,正祖从宝镜法师那里听到了关于《父母恩重经》的深刻而感人的讲法。“佛家将父母的恩情分为十种。第一是怀胎守护之恩,第二是临产受苦之恩,第三是生子育儿之恩,第四是咽苦吐甘之恩,第五是回干就湿之恩……”

Japanese: ある日、正祖は宝鏡僧侶から『父母恩重経』に関する深く感動的な説法を聞きました。「仏教では、ご両親の恩を十種類に分けて説明します。一つ目は私を身ごもり守ってくださった恩、二つ目は苦労を乗り越えて産んでくださった恩、三つ目はあらゆる困難の中でも育ててくださった恩、四つ目は良いものは子に与え、辛いことは親が耐え忍ぶ恩、五つ目は子に乾いた場所を与え、ご自身は湿った場所に寝る恩ですね……。」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설법을 끝까지 들은 정조는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반드시 절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정조는 먼저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의 화산으로 아버지의 묘를 정성껏 옮겼습니다. 이어서 그 근처 절, 양시터(신라 문성왕 16년에 창건된 사찰)에 부왕의 명복을 비는 능사를 짓도록 명합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Deeply moved after hearing the entire sermon, Jeongjo resolved to build a temple for his deceased father. First, Jeongjo carefully relocated his father's tomb to Hwasan in Annyeong-ri, Taean-myeon, Hwaseong-gun, Gyeonggi Province at that time. Subsequently, he commanded that a royal temple (neungsa) be built near the site of the existing Yangsijeo Temple (a temple founded in the 16th year of King Munseong of Silla) to pray for his father's peaceful afterlife.

Chinese: 听完法师的全部讲解后,正祖深受感动,下定决心一定要为已故的父亲建造一座寺庙。正祖首先将父亲的墓地精心迁至当时京畿道华城郡泰安面安宁里的华山。随后,他下令在那附近的寺庙——良施寺(新罗文圣王16年创建的寺庙)修建一座陵寺,为先父祈福冥福。

Japanese: 説法を最後まで聞いた正祖は大きな感動を受け、亡き父のために必ず寺を建てなければならないと決心しました。正祖はまず、当時の京畿道華城郡泰安面安寧里にある華山へ、父の墓を丁重に移しました。続いてその近くにあった良施寺(新羅文聖王16年に創建された寺院)に、先王の冥福を祈る陵寺を建てるよう命じます。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정조는 보경 스님을 전국의 시주를 맡는 팔도도화주로 임명했습니다. 사도세자의 원통함을 달래기 위해 절을 짓는다는 소식에 백성들도 저마다 힘을 보탰습니다. 보경 스님은 백성들의 정성이 모인 8만 냥의 시주금으로 4년에 걸쳐 장엄한 절을 완공했습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Jeongjo appointed Monk Bogyeong as the Paldo Dohwaju, responsible for collecting donations nationwide. Upon hearing the news that a temple was being built to soothe the wrongful suffering of Crown Prince Sado, the common people also contributed their efforts. With 80,000 nyang in donations gathered from the sincerity of the people, Monk Bogyeong completed the magnificent temple over four years.

Chinese: 正祖任命宝镜法师为八道都化主,负责在全国各地募集捐款。听到为了平息思悼世子的冤屈而修建寺庙的消息后,百姓们也纷纷出力相助。宝镜法师凭借百姓们汇集的八万两捐款,历时四年,建成了一座庄严宏伟的寺庙。

Japanese: 正祖は宝鏡僧侶を全国からの喜捨を統括する八道都化主に任命しました。思悼世子の無念を慰めるために寺が建てられるという知らせに、民衆もそれぞれ力を貸しました。宝鏡僧侶は民衆の真心がこもった8万両の喜捨金で、4年をかけて荘厳な寺を完成させました。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낙성식을 앞둔 밤, 정조는 꿈에서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힘차게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꿈이 상서롭다고 여긴 정조는 낙성식 당일 친히 절에 방문해,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로 짓기로 했습니다. 이 용주사가 바로 오늘날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에 자리한 조계종 제2교구 본사입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The night before the dedication ceremony, Jeongjo had a dream where a dragon, holding a wish-fulfilling pearl in its mouth, powerfully ascended to the sky. Deeming this dream auspicious, Jeongjo personally visited the temple on the day of the ceremony and decided to name it 'Yongjusa (龍珠寺)', meaning 'Dragon Pearl Temple'. This Yongjusa is today the head temple of the Jogye Order's 2nd district, located in Songsan-ri, Taean-eup, Hwaseong City.

Chinese: 在落成典礼前夜,正祖梦见一条龙口衔如意宝珠,威风凛凛地腾空而起。正祖认为此梦预示吉祥,于是亲自在落成典礼当天造访寺庙,并将其命名为“龙珠寺”(意为“龙之宝珠寺”)。如今,这座龙珠寺正是位于华城市泰安邑松山里的曹溪宗第二教区本寺。

Japanese: 落成式を控えた夜、正祖は夢の中で龍が如意宝珠を口にくわえ、力強く天へ昇る姿を見ました。この夢が吉兆であると考えた正祖は、落成式当日に自ら寺を訪れ、その名を「龍珠寺(りゅうしゅじ)」とすることにしました。この龍珠寺が、今日、華城市泰安邑松山里に位置する曹渓宗第2教区の本山です。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정조는 자신의 효심을 일깨워주고 용주사 건립에 큰 힘이 된 보경 스님에게 절의 관리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손꼽히는 화공을 찾아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기게 했고, 이 그림을 경판으로 만들어 용주사에 모셨습니다. 이 경판들은 지금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밖에도 명나라 금동 향로, 다양한 그림, 용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청동 향로 등을 용주사에 하사하며, 정조는 아버지를 향한 깊은 효심을 아낌없이 표현했습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Jeongjo entrusted the management of the temple to Monk Bogyeong, who had inspired his filial piety and greatly assisted in the construction of Yongjusa. He then sought out the nation's most renowned painters to render the contents of the 『Sutra on the Profundity of Parental Grace』 into illustrations, which were then carved into woodblocks and enshrined at Yongjusa. These woodblocks remain well-preserved in their original state to this day. In addition to these, Jeongjo generously expressed his deep filial piety towards his father by bestowing various treasures upon Yongjusa, including a gilt-bronze incense burner from the Ming Dynasty, various paintings, and an intricately carved bronze incense burner adorned with dragon motifs.

Chinese: 正祖将寺庙的管理委托给宝镜法师,因为他不仅唤醒了自己的孝心,还在龙珠寺的建造过程中给予了巨大帮助。随后,他遍寻全国最杰出的画工,将《父母恩重经》的内容绘制成画,并将这些画制成经板,供奉于龙珠寺。这些经板至今仍完好地保存着原貌。除此之外,正祖还向龙珠寺赏赐了明朝鎏金铜香炉、各式画作以及雕刻精美的龙纹青铜香炉等,以此倾尽心力表达他对父亲的深切孝心。

Japanese: 正祖は、自身の孝心を呼び覚まし、龍珠寺建立に大きな力となってくれた宝鏡僧侶に寺の管理を任せました。そして、全国有数の絵師を探し出し、『父母恩重経』の内容を絵に写させ、この絵を版木にして龍珠寺に納めました。これらの版木は、今も原型をそのままに良好に保存されています。この他にも、明代の金銅香炉、多様な絵画、龍の文様が精巧に彫られた青銅香炉などを龍珠寺に下賜し、正祖は父への深い孝心を惜しみなく表現しました。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임금은 능이 가까운 수원에 웅장한 화성을 쌓고, 도시를 소경이라는 작은 수도로 승격시켰습니다. 이는 비명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정조는 기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용주사를 자주 찾아 아버지의 넋을 달랬습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The king built the magnificent Hwaseong Fortress in Suwon, close to the tomb, and elevated the city to a minor capital called Sogyeong. This was his utmost effort for his father, who had passed away tragically. Jeongjo not only visited Yongjusa on commemorative dates but also regularly during ordinary times to comfort his father's spirit.

Chinese: 正祖在靠近陵墓的水原修建了宏伟的华城,并将这座城市升格为小京(意为“小都城”)。这都是为了他那位不幸离世的父亲所做的所有努力。正祖不仅在忌日,平时也经常前往龙珠寺,以慰藉父亲的亡魂。

Japanese: 王は陵墓に近い水原に壮大な華城を築き、都市を小京という小さな都に昇格させました。これは、非業の死を遂げた父のためにできる限りの努力を尽くしたものでした。正祖は忌日だけでなく、普段から龍珠寺を頻繁に訪れ、父の魂を慰めました。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어느 초여름 날, 정조가 능을 참배하던 중 능 앞에 서 있는 소나무에 송충이가 잔뜩 붙어 나무들이 병드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임금은 혼잣말로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허허, 이게 웬일인가. 내 땅에 사는 송충이들이 어찌 임금인 내 아버지의 묘 앞 소나무 잎까지 갉아먹는단 말이냐? 아버지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것만도 가슴 아픈데, 너희까지 이리 괴롭히니 더욱 참기 어렵구나." 정조는 이에 직접 소나무 가지에 붙은 송충이 한 마리를 잡아 어금니로 깨물어 죽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뒤로 이 일대에서 송충이들이 sp이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용주사 주변과 융건릉 일대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특히 용주사 근처의 회양목은 천연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One early summer day, while Jeongjo was paying respects at the tomb, he noticed pine caterpillars abundantly attached to the pine trees in front of it, causing the trees to sicken. The king lamented to himself, "Oh my, what is this? How can pine caterpillars living in my land even gnaw at the pine needles in front of my father's tomb, who was a king? It is heartbreaking enough that my father died unjustly, but for you to torment him like this, it is even harder to bear." Jeongjo then personally caught one of the pine caterpillars on a branch and crushed it with his molars. Miraculously, it is said that all pine caterpillars completely disappeared from this area thereafter. Even today, the vicinity of Yongjusa and the area around Yungneung and Geolleung Royal Tombs are graced with magnificent dense pine forests, and particularly, the boxwood tree near Yongjusa is designated as Natural Monument No. 10.

Chinese: 某年初夏,正祖参拜陵墓时,发现陵前松树上布满了松毛虫,导致树木病恹恹的。国王自言自语地叹息道:“哎呀,这到底是怎么回事?我土地上的松毛虫,怎敢啃食我父亲陵墓前的松叶?父亲冤屈而逝已经让我心痛不已,你们还这样折磨,我更难忍受了。”正祖随即亲自捉住一根松枝上的松毛虫,用牙齿将其咬死。说来也怪,据说此后这一带的松毛虫就全部消失了。如今,龙珠寺周边和隆健陵一带仍然拥有茂密的松树林,景色壮观,尤其是龙珠寺附近的黄杨木被指定为韩国天然纪念物第10号。

Japanese: ある初夏の日、正祖が陵墓を参拝していると、陵前にある松の木に松虫がびっしり付着し、木々が病んでいるのを目にしました。王は独り言のように嘆きました。「はて、これはどうしたことか。我が地に住む松虫どもが、どうして王である父の墓前の松葉まで食い荒らすのか?父が不当に亡くなっただけでも胸が痛むのに、お前たちまでこうして苦しめるとは、さらに耐えがたい。」正祖は、自ら松の枝に付いた松虫を一匹捕まえ、奥歯で噛み殺しました。不思議なことに、その後、この一帯から松虫がすっかり姿を消したと伝えられています。今でも龍珠寺周辺と隆健陵一帯は鬱蒼とした松林が壮観をなし、特に龍珠寺近くのツゲの木は天然記念物第10号に指定されています。


한글원문 (Original Korean)

또 어떤 가을날, 임금이 용주사로 향하는 길에 수원 근처 군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높은 고갯마루를 오르느라 가마가 느릿느릿 움직이자, 임금은 답답한 마음에 소리쳤습니다. "여봐라, 어찌 이렇게 더디냐?" 그러자 시종이 아뢰었습니다. "폐하, 언덕을 올라가느라 걸음이 더딜 뿐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깊었던 정조의 마음을 헤아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 '지지대'라고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자연스러운 번역 (Natural Translation)

English: On another autumn day, as the king was on his way to Yongjusa, he passed through Gunpo near Suwon. As his palanquin moved slowly while ascending a high pass, the king, feeling impatient, called out, "Hey, why are we so slow?" An attendant then replied, "Your Majesty, our pace is merely slow because we are climbing a hill." Understanding Jeongjo's deep longing for his father, the villagers thereafter came to call this pass 'Jijidae' (meaning 'Slow Progress').

Chinese: 另一个秋日,国王前往龙珠寺的途中经过水原附近的军浦。当轿子缓慢地爬上高坡时,国王心中烦闷,喊道:“喂,怎么这么慢?”随侍禀告道:“陛下,只是因为爬坡,所以脚步慢了些。”体恤到正祖对父亲深切的思念之情,此后村民们便将这个山坡称为“迟迟台”(意为“慢悠悠的台阶”)。

Japanese: またある秋の日、王が龍珠寺へ向かう道中、水原近くの軍浦を通り過ぎました。高い峠を登るため、駕籠がゆっくりと動くと、王は苛立ち混じりに叫びました。「おい、なぜこんなにも遅いのか?」すると、侍従が申し上げました。「陛下、坂道を上るため、歩みが遅いだけでございます。」父への深い慕情を抱いていた正祖の気持ちを察し、その後、村人たちはこの峠を「遅々台(ちちだい)」と呼ぶようになったそう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