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 허공에 계란을 세운 서산대사
(자연스럽게 수정하였습니다)
• 주제 : 우지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지역 : 강원도
• 참고문헌 : 서산대사전기
• 첨부서류 :

묘향산 깊은 곳, 누더기 의복을 걸쳤지만 그 위엄은 천하를 압도하는 한 스님이 득도한 듯 축지법을 쓰며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를 넘어 강원도 금강산 장안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명대사였지요. 그는 스물세 살이나 많은 서산대사와 도술을 겨루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었습니다. 자신보다 서산대사의 술수가 높다는 세간의 소문을 외면하려 했으나, 풍문이 끊이지 않자 기어코 실력을 겨뤄보기로 결심한 것이었죠.
사명대사의 마음은 초조하면서도 굳건했습니다. "신출귀몰한 서산대사의 실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나의 묘기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어 세상을 놀라게 해야겠다!"
사명대사가 금강산 장안사 골짜기에 이르자, 우거진 숲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천년의 적막을 깨며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사명대사가 계곡을 오를 무렵, 장안사 안에서 염주를 굴리던 서산대사는 홀연히 손을 멈추고 상좌에게 일렀습니다.
"이 길로 산을 내려가 묘향산의 사명대사를 마중하여라."
상좌는 깜짝 놀랐습니다. "장안사에 사명 스님께서 오신다는 전갈은 없었사옵니다만…"
서산대사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허허, 골짜기를 내려가다 보면 냇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이 있을 것이니, 바로 그곳에 사명대사가 오고 있을 것이다." 마치 앞을 훤히 내다보는 듯한 서산대사의 말에 상좌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냇물이 거꾸로 흐르다니,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로구나. 정말 사명대사가 오시는 걸까, 아니면 서산대사께서 나를 시험하시는 걸까?" 평소에는 들은 적 없는 분부였기에, 상좌는 여러 생각에 잠긴 채 골짜기를 내려가다 문득 걸음을 멈췄습니다. 분명 냇물이 거슬러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들어 살피니, 저 멀리 한 스님이 오고 있었으니, 바로 사명대사였습니다. 상좌는 그 스님 앞에 공손히 합장 배례를 올렸습니다.
"스님, 스님께서 사명대사이십니까?" "그렇소만…"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저는 서산대사의 분부를 받고 대사님을 마중 나온 장안사 상좌이옵니다."
사명대사는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서산대사가 어떻게 자신의 방문을 미리 알고 마중까지 내보냈을까요? 마치 덜미를 잡힌 듯 아찔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좌는 사명대사의 앞장을 서서 즐거운 마음으로 절을 향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사명대사를 직접 모시게 되니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윽고 장안사에 도착했을 때, 법당 문이 스르륵 열리며 서산대사가 막 법당을 나서려는 찰나였습니다. 사명대사는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공중에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를 잽싸게 잡아 쥐더니 첫 말문을 열었습니다.
"대사님, 제 손아귀의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참새의 죽고 사는 것은 사명대사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난처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죠. 서산대사는 태연자약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허허 사명대사, 이 몸의 발이 지금 한 발은 법당 안에 있고, 한 발은 법당 밖에 나가 있는데, 이 몸이 밖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안으로 들어서겠습니까?"
이 역시 사명대사를 난처하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안으로 든다고 하면 한 발을 마저 밖으로 내놓을 것이요, 밖으로 나갈 것이라 답하면 도로 안으로 들어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명대사는 멀리서 손님이 왔으니 문밖으로 나와 영접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지요."
"과연 그렇소. 사명당께서 그 먼 길을 한달음에 오셨는데, 어찌 문밖에 나가지 않고 영접하지 않겠소."
모든 대화가 끝난 듯 서산대사는 사명대사에게 어서 올라올 것을 권했지만, 사명대사는 여전히 손에 참새를 쥐고 있었기에 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이 참새는 어찌 되겠습니까?"
"불도를 닦는 이가 어찌 살생을 하겠습니까?" 서산대사는 거침없이 답했습니다. 이렇게 당대 두 고승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명대사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밝히며, 이번에는 도술로 겨뤄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사명대사는 봇짐에서 바늘이 가득 담긴 그릇을 하나 꺼냈습니다. 잠시 그릇 속의 바늘을 응시하자, 놀랍게도 바늘은 먹음직스러운 국수로 변했습니다. 사명대사는 맛있게 국수를 먹으며 서산대사에게도 권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서산대사 역시 국수를 먹었지만, 사명대사와는 달리 입에서 바늘을 뱉어내니 실로 대단한 신통력이었습니다.
사명대사는 다시 계란을 꺼내어 한 줄로 곧게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나 서산대사는 그와는 반대로, 허공에서 계란을 쌓아 내려왔습니다. 사명대사는 초조해졌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쌓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사명대사는 열세를 느꼈지만, 한 번 더 겨루기로 했습니다.

사명대사는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던 장안사 상공에 갑자기 먹구름이 뒤덮이더니,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 번개와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순식간에 땅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무서운 기세였습니다. 사명대사는 내심 기뻤습니다. '사명대사, 과연 훌륭한 신술이오!' 이 정도면 서산대사도 굴복할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서산대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습니다. "뭘요, 대사께서는 아마 이 비를 멈추게 할 뿐 아니라 하늘로 되돌리실 수 있으시겠지요." "허허, 사명대사께서 미리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사명대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서산대사는 방금 전 사명대사처럼 합장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숨 막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줄기차게 퍼붓던 비가 뚝 그치더니, 빗방울은 하늘로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오르던 빗방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로 변하여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청명한 세상은 새들의 노래와 환희로 가득 찼습니다.
"서산대사님! 진작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과연 만천하의 스승이십니다. 부끄러운 몸이지만 저를 제자로 삼아 법도에 이르도록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사명대사는 눈물로써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서산대사도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진정 그러하다면 나 또한 기쁘지 않을 수 없소. 그대처럼 슬기로운 제자를 맞이하게 되니 더없이 기쁘구려." 그들은 합장한 채 오래도록 부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사명대사는 그날부터 서산대사의 수제자로 용맹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西山大肺傳記>
[네이버 지식백과] 허공에 계란을 세운 서산대사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핵심 키워드
인물 : 사명대사, 서산대사, 상좌
배경 : 묘향산, 금강산 장안사, 골짜기, 법당
주제 : 도술, 지혜, 신통력, 깨달음, 영접, 경쟁, 겸손, 제자
주요 사건 : 축지법, 냇물 거꾸로 흐름, 참새 살생 여부, 법당 발걸음 논쟁, 바늘 국수 변화, 허공에 계란 쌓기, 비를 되돌려 새로 변함, 제자 간청
상징 : 참새 (생명 존중), 계란 (불가능의 가능), 비 (자연 현상과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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