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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교용어사전 (보우(普雨) – 본래자성청정열반)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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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普雨) 본래자성청정열반)

 

#보우(普雨, 1509~1565)---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신임을 얻어 명종 3(1548)에 봉은사(奉恩寺)의 주지가 돼 당시 질식 상태에 있던 불교를 부흥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禪敎) 양종을 부활시키고, 과거에 승과(僧科)를 두게 하는 등 많은 활약을 했다. 억불정책(抑佛政策)에 맞서 불교를 부흥시켜 전성기를 누리 게 했으나 그의 죽음 직후 원상태로 돌아갔다.

 

#보임(保任)--->만행 참조.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고려 중기의 승려. 무신의 난으로 정치권력이 무신들로 교체되면서 불교교단도 재편되던 때였다. 따라서 그는 정치세력과 지나치게 밀착함으로써 야기된 불교계의 폐단과 선종과 교종 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비판하며 불교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침체된 선을 부흥시키면서 불교계를 개혁하는 한편 중국 당대(唐代)의 선종 승려 하택신회(荷澤神會)의 이론을 받아들여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에 입각한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했다.

 

#보타락가산(補陀落山)---관세음보살이 거주하는 산. 산스크리트어 포탈라카(potalaka)를 음역한 것이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락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 데, 바다에 접해 있는 팔각형의 바위산으로, 산에서 자라는 꽃과 흐르는 물은 빛과 향기를 낸다고 한다. 관세음보살 은 인도의 남쪽에 있는 이 보타락가산에 머문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를 본 따서 우리나라 여러 곳에 낙산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강화군 석모도의 보문사 뒤의 낙가산(해발 235m)과 마애관음상이 유명하다.

 

#보현보살(普賢菩薩)---문수보살이 지혜를 상징한다면, 보현보살은 대행(大行)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오른쪽에 협시해 이덕(理德)과 정적(定德)과 행덕(行德)을 맡고 있다. 이와 같이 이치와 명상과 실천을 관장하는 것이 보현보살의 특징이다.

원을 세우면 반드시 실행한다고 해, <화엄경>에서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기에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보현보살은 형상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흰 코끼리를 타거나 연화대에 앉아 있는 형상이 대부분이다.

대행(大行)---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영원에 걸쳐 여러 선행을 행하고 공덕을 쌓는 일로 대승의 실천을 말한다.

행원(行願)---행원은 신행(身行)과 심원(心願)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바람과 그 실천의 서원(誓願)을 말한다.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인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행원(行願)을 기록한 경. <화엄경(華嚴經)> 안에 수록돼 있으며,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다. , 화엄경에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에 의해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53선지식(善知識)을 차례로 찾아가서 도를 묻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찾았을 때 보현보살이 설한 법문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보현보살의 행원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해 <화엄경>에서 따로 분리시켜서 이 한품을 별도 책으로 간행, 유포시켰다.

 

#복전(福田)---논밭이 곡물을 자라게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보에 공양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베품을 행하면 자기에게 복이 돼 돌아와서 복덕(福德)의 열매를 얻게 되므로 복밭(福田)이라고 한다. 즉 불법(佛法)의 참된 신앙이 곧 복의 밭이 된다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말기와 고려시대를 통해 승려를 복전이라 일컫기도 했다.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중생의 마음이란 번뇌로 더렵혀진 미혹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마음의 본성은 본래가 청정한 각체(覺體)인 것이다. 이 청정한 각체를 본각(本覺)이라 한다. 따라서 본각이란 우리가 본래 깨달아 있다는 말이고, 시각은 이런 우리를 스스로 각자 확인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이르기를 본각이란 본래부터 불성을 갖추고 있는 진여의 본체이며, 시각이라 함은 수행의 공()을 방편으로 대지혜광명의 공덕을 나타내는 각()이다. 이와 같이 본각과 시각은 서로 대칭되는 말이다.

사람들은 번뇌 망상으로 시달림을 받다가 홀연히 한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평정되면 깨달음을 얻었다, 한 소식을 얻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고 이르듯 본래 마음[本覺]이 깨달았다고 해서 더 맑아지는 것도 아니고 번뇌 망상에 물들었다고 해서 더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다. 본각의 불성은 본래 청정한 것이다.

무시이래의 번뇌를 수행에 의해 차례로 없애고 서서히 마음의 본원을 깨닫는 것이 시각이며, 번뇌로 덮여 있는 미혹한 모습이지만 마음의 본성은 본래 청정한 깨달음의 본체라는 것을 본각이라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불교가 성선설인가 성악설이가 하는 논의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선설도 아니고 성악설도 아니다. 본래면목이다. 즉 본래 그대로라는 말이다.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인위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마음을 일컫는다.

6조 혜능(慧能)은 제5조 홍인(弘忍)으로부터 의발(衣鉢)을 전수받았으나 대중의 시샘으로 박해를 받아 남쪽으로 도피했다. 그 의발을 빼앗으려고 뒤쫓는 자들 중에 무사 출신의 발 빠른 혜명(慧明)이란 자가 있어 뒤쫓아 왔다. 이에 혜명이라는 수좌를 만나 혜능은 이렇게 물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 것이오. 그렇다면 이러한 때 그대의 본래면목은 어떤 것이오?” 이 한 마디 물음에 깨달음을 얻은 혜명은 혜능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이때 혜명의 깨달음이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고, 이후 선가에서 본래면목이란 말을 자주 쓰게 됐다. 여기서 본래면목은 혜능이 가진 의발을 뺏으려는 마음을 비롯한 온갖 생각들을 다 떨쳐낸 고유한 자기, 순진무구한 자기,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자기를 뜻한다. , 우리의 본래 모습, 중생이 본디 지니고 있는 순수한 심성을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자성(自性), 진아(眞我), 불성(佛性), 진여(眞如), 일심(一心) 등으로 일컫는다.

본래면목엔 으레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란 말이 붙어서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라 하는데, ‘부모미생전이란 분별 이전, 번뇌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이고, 본래면목이란 진실한 나의 모습, 또는 본래의 자기 성품을 말한다. 이러한 본래면목은 우주 삼라만상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 우주 삼라만상이 다 멸한다 해도 본래면목은 멸하지 않는다. 그래서 태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인 것이다.--->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참조.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열반에는 2열반 3열반 4종 열반 등의 분류가 있다. 그 중 4종 열반은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으로서 본래자성청정열반은 이에 속한다.

본래자성청정이란 모든 사람의 자성이 본래 청정한 열반, 즉 진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 진여의 성품이 청정해서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고 생멸이 없는 적정한 열반이고, 본래 성불, 본래 부처와도 같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