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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설화

불교설화 - 명의(名醫) 지바카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8. 10.

불교설화 - 명의(名醫) 지바카

(내용을 자연스럽게 수정했습니다)

 

주제 : 기이

국가 : 인도

참고문헌 : 사분률 39, 40

첨부파일 :

670 불교설화 - 명의(名醫) 지바카2.mp3
11.56MB

 

 

석존께서 마갈타국 죽림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설법하시던 때의 일입니다. 당시 중인도 베살리성에는 안바라발리라는 매우 아름다운 창기(娼妓)가 있었는데, 하룻밤을 함께 보내려면 50냥을 내야 했습니다. 낮에도 50냥만 내면 만날 수 있었죠. 아름다운 안바라발리 덕분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베살리성은 크게 번창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갈타국의 대신들은 빈파사라 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어찌하여 이 왕사성에는 그런 창기가 없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왕의 명에 따라 대신들은 분주하게 창기를 들일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왕사성에는 바라밧데라는 세상에 드문 미녀가 있었는데, 그녀의 아름다움은 안바라발리조차 비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들은 그녀를 창기로 삼고, 그녀와 함께하려는 자들에게 밤낮으로 100냥을 내도록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여인 덕분에 왕사성 또한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크게 번영을 누렸습니다.

 

당시 빈파사라 왕에게는 무이(無畏)라는 왕자가 있었습니다. 무이 왕자는 이 바라밧데를 매우 아꼈고, 어느 날 밤 둘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라밧데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임신 중에는 문지기에게 병이라고 일러 손님을 받지 않았습니다. 만삭이 되어 아들을 낳은 그녀는 하녀에게 아이를 흰 천에 싸서 길가에 버리라고 시켰습니다.

 

아침 일찍 무이 왕자가 마차를 타고 왕궁으로 향하던 중, 길가에 흰 물건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자는 마차를 멈추고 시종에게 저 하얀 보따리는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시종이 보따리 안을 살펴보더니 갓 태어난 아기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왕자가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 묻자 시종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시 자식이 없었던 왕자는 시종에게 아이를 데려오게 하여 안고 다시 궁중으로 돌아왔습니다.

 

길가에 버려졌던 아이를 무이 왕자는 몹시 귀여워했고, 그 아이에게 지바카(耆婆)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유모를 붙여 양육했습니다. ‘지바카목숨이라는 뜻으로, 버려졌을 때 살아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의술의 길에 들어서다

지바카가 성년이 되었을 때, 왕자는 그를 불러 언제까지 왕궁 안에서 놀 수만은 없으니, 세상 밖으로 나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권했습니다. 지바카는 즉시 , 잘 알겠습니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습니다.”라며 동의했습니다. 그는 어떤 기술을 배울지 여러모로 생각한 끝에, 결국 의술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도 편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것은 의술밖에 없다. 그렇다, 나는 의사가 되겠다.”

 

당시 토쿠샤시라국에는 아다일리 성에 힝카라라는 이름의 명의(名醫)가 있었습니다. 지바카는 이 명의의 명성을 듣고 배움을 찾아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7년간 의술을 수행한 지바카는 이제 몇 년 더 수행해야 졸업할 수 있을지 궁금하여 스승 힝카라에게 물었습니다. 스승은 그에게 바구니와 풀을 파는 도구를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토쿠샤시라국 십리 사방을 찾아 약이 되지 않는 풀이 있거든 파 오너라.”

 

지바카는 스승의 명을 받아 십리 사방을 찾아보았지만, 모두 약이 되는 풀뿐이고 약이 되지 않는 풀은 한 포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풀을 채취하든 그 속에 약이 되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빈 바구니를 가지고 스승에게 돌아와 아뢰었습니다. “분부대로 십리 사방을 찾아보았지만 약이 안 되는 풀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풀을 보아도 쓸모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승 힝카라는 손뼉을 치며 그를 칭찬했습니다. “너는 이제 이곳을 떠나도 좋다. 너는 이미 의술을 졸업했다. 나는 지금 인도에서 제일가는 명의로 칭송받고 있지만, 내가 죽고 난 다음 그 뒤를 이을 자는 너 외에는 없다.”

 

첫 번째 치료와 귀향

이리하여 지바카는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토쿠샤시라는 소국이며 변방의 나라다. 고향인 마갈타국으로 돌아가 개업하자.’ 그는 7년 동안 정들었던 토쿠샤시라를 뒤로하고 고향인 마갈타국 왕사성으로 향했습니다.

 

그 도중에 마갈타국의 한 성에 들렀는데, 그곳에 사는 장자(長者)의 부인이 12년간 두통에 시달려 어떤 의사도 치료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장자의 집으로 가서 문지기에게 의사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장자에게 전해주게.”라고 말했습니다. 문지기가 이 사실을 장자에게 알리자, 부인이 문지기에게 어떤 모습의 의사더냐?”라고 물었습니다. 문지기가 대단히 젊은 의사입니다.”라고 답하자, 부인은 노련한 의사들조차 손을 든 난치병을 어찌 그런 젊은 의사가 치료할 수 있겠느냐며 전혀 상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의사에게는 이제 볼 일이 없어졌으니 돌아가라고 하라.”

 

문지기가 지바카에게 부인의 말을 전하자 그는 미안한 일이지만 다시 한번 부인께 말씀드려라. 치료하는 것만을 허락해 달라고 하라. 만일 병이 치료되면 사례를 받을 것이고, 치료가 되지 않으면 사례를 받지 않겠다고 하여라.”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문지기가 이 뜻을 다시 부인에게 전하자 부인은 그렇다면 치료를 받더라도 별로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의사를 불렀습니다.

 

지바카는 부인의 침대 곁으로 와서 질병의 위치, 원인, 경과 등을 상세하게 듣고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병은 나을 것입니다.” 그는 약을 꺼내 달여서 물약을 만들어 부인의 코에 부었습니다. 물약은 코에서 입으로 나와 침과 함께 우유즙이 토해져 나왔습니다. 부인은 그릇에 이것을 받아 침과 우유즙을 나누어 침은 버리고 우유즙만을 취했습니다.

 

그는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낭패한 환자를 만났구나. 더러운 우유즙마저 버리기를 꺼려한다니. 약값은 도저히 받지도 못하겠다.’ 부인은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어찌하여 그런 싫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지바카는 생각한 대로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극히 적게 더러운 물건조차 아까워 버리기를 꺼려하니, 이래서는 도저히 약값 같은 것은 치러줄 기색도 없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그를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아무리 조금밖에 더럽지 않은 우유즙일망정 등유 대신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버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병이나 낫게 해주세요.” 지바카의 뛰어난 치료 덕분에 그렇게 오랫동안 부인을 괴롭혔던 머리 병은 깨끗이 완쾌되었습니다.

 

장자의 부인은 결코 구두쇠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40냥의 돈과 하녀, 그리고 차마(車馬)를 치료의 사례로 그에게 주었습니다. 지바카는 이 막대한 사례금을 받고 고향인 왕사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우선 아버지인 무이 왕자에게 가서 면회하고, 왕궁을 떠나 지금까지의 일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을 양육하고 가르쳐준 은혜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갈타성의 장자 부인에게서 얻은 저의 첫 번째 소득은 모두 왕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무이 왕자는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모처럼 네가 일해서 얻은 최초의 소득이니 너의 것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빈파사라 왕의 시의(侍醫)가 되다

그 당시 빈파사라 왕은 치질을 앓고 있어 항문에서 가끔 출혈이 있었습니다. 시녀들은 이를 보고 웃으며 왕의 질병은 마치 우리들의 월경과 같단다.”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럽게 여겨 곧 무이 왕자를 불러 나는 항문에서 피가 나는 질병에 걸렸다. 너는 나를 위해 용한 의사를 불러 오도록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지바카는 의술에 능통하고 있습니다. 그라면 왕의 질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라고 아뢰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지바카를 즉시 불러 오너라.”

 

왕은 지바카를 불러 나를 생각하는 자는 그에게 재물을 주도록 하라.”라고 명했습니다. 시녀들은 자기 몸을 장식하던 영락, 팔찌, 보석, , 은 등을 꺼내 왕 앞에 산처럼 쌓았습니다. 왕은 그를 불러 이것은 질병을 고쳐준 사례다. 어서 받아주기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바카는 대왕이여, 절대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무이 왕자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대왕의 질병을 치료해 드린 것뿐입니다.”라고 말하며 사례품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에 왕은 지바카야, 앞으로는 나와 승려, 그리고 궁중에 있는 사람에게만 병을 치료하도록 하라. 그 밖의 사람은 치료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그를 궁중의 시의(侍醫)로 임명했습니다.

 

머리 속 벌레 제거 수술

그때 왕사성에는 늘 두통으로 고생하는 또 다른 장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도 완쾌될 가망이 없다고 하여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어떤 의사는 7, 어떤 의사는 6, 어떤 의사는 5년 내지 1, 어떤 의사는 7개월, 어떤 의사는 6개월 내지 1개월, 어떤 의사는 7일밖에 살지 못한다고 단정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었으므로 장자는 어떻게든 이 병을 고치려는 일념으로 스스로 지바카의 집을 찾아가 치료를 부탁했습니다. “아무쪼록 저의 질병을 고쳐주십시오. 그 사례로 금 100냥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지바카는 저는 당신을 치료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장자는 다시 그렇다면 금 400냥을 바치겠으니 어서 저의 질병을 치료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지바카는 또다시 저는 당신의 질병을 고쳐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다시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전 재산을 바치고, 저는 당신의 하인이 되어도 좋으니 아무쪼록 저의 질병을 고쳐 주십시오.”

 

지바카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 없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국왕으로부터 승단(僧團)과 궁중에 있는 사람만을 치료하고 그 밖의 사람은 일절 치료하면 안 된다는 분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꼭 저의 치료를 받고 싶으시다면 국왕에게 가서 허락을 받아 오십시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즉시 왕궁으로 가서 왕을 면회하고 아뢰었습니다. “대왕이여, 저는 질병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아무쪼록 대왕의 시의인 지바카로 하여금 저의 질병을 고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장자의 소원을 받아들여 즉시 지바카를 불러 장자의 질병을 치료해 주도록 명했습니다.

 

그래서 지바카는 그 장자의 집으로 가서 병자로부터 질병의 위치, 원인, 경과 등을 자세히 듣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질병을 고쳐 드리겠습니다.” 지바카는 병자에게 소금을 주어 입을 헹구게 하고,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뒤 침대에 몸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친척들을 모두 사방에 모아놓고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긴 칼을 가지고 머리를 갈라 두정골(頭頂骨)을 열어 머릿속에 가득 찬 벌레를 친척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질병의 원인입니다. 앞서 7년 후에 죽을 것이라고 진단한 의사는 7년 후에는 이 벌레가 뇌를 완전히 갉아먹는다고 진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진단입니다. 6년이라고 진단한 의사도, 5년 내지 1년이라고 진단한 의사도, 6개월 내지 1개월이라고 진단한 의사도 모두가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7일 내에 죽을 것이라고 진단한 의사만이 틀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 병자의 치료가 7일 늦었더라면 죽었을 것입니다.”

 

지바카는 머릿속의 벌레를 깨끗이 제거하고, 조밀(稠密)한 약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뒤 두개골을 맞추어 실로 꿰매고 약을 발랐습니다. 그러자 고통이 없어지고 살이 아물며 털이 나서 아픔도 상처도 사라졌습니다. 치료가 완전히 끝난 후, 그는 장자에게 당신은 치료하기 전에 말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장자는 ,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재산은 당신께 바치고 당신의 하인이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지바카는 손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최초에 말했던 금 100냥만 받으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장자는 그 다음 말했던 금 400냥을 치료의 사례금으로 그에게 보냈습니다. 지바카는 그중 100냥을 왕에게, 100냥을 왕자에게 드리고 나머지 200냥은 자신의 소유로 했습니다.

 

장이 뒤틀린 아이를 치료하다

또한 그 당시, 쿠센미국(俱瞻彌國)의 어느 장자 아들이 수레바퀴에서 놀다가 실수로 장()이 뒤틀려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고 배설도 못 하는 상태로 뱃속에 고여 있어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그 나라에 사는 누구도 이를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장자는 마갈타국에 지바카라는 명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빈파사라 왕에게 사자를 보내 그의 왕진(往診)을 요청했습니다. 왕은 지바카를 불러 이 이야기를 전하며 쿠센미국의 장자로부터 너의 왕진을 청해 왔는데 치료를 할 수 있다면 가 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지바카는 가서 치료해 주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지바카는 수레를 타고 쿠센미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장자의 아들은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슬픈 음악 속에 들판으로 장례 행렬이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레를 멈추게 하고 길가의 사람을 불러 저 피리 소리와 장구 소리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것은 장자의 아들의 장례식을 위한 음악입니다. 마갈타국에서 지바카라는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불쌍하게도 죽고 말았습니다.”

 

지바카는 이 음악 소리가 결코 죽음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수레에서 내려 장례식 행렬에 가까이 가서 관을 열게 하고, 스스로 긴 칼을 쥐고 어린이의 배를 갈라 뒤틀린 장을 끄집어내어 장의 위치를 바로 잡아놓자, 장자의 아들은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설화 속 지바카의 지혜와 뛰어난 의술이 참으로 놀랍지요?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질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 환자와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시기에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 깊으셨을까요? 궁금해지네요.

 

<四分律 第三九, >

 

[네이버 지식백과] 명의 지바카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