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 나한님의 눈을 훼손하고 생을 마감한 이의 이야기
(제목도 수정 내용 자연스럽게 수정 : 원 제목:나한님들의 눈을 파고 폭탄 맞아죽은 사람)
• 주제 : 우지
• 국가 : 한국
• 시대 : 근현대
• 지역 : 경기도
• 참고문헌 : 속편영험설화
• 첨부파일 :

서울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네 개의 유명한 사찰이 있었습니다. 동쪽의 불암사, 서쪽의 정토사(현재의 백련사), 남쪽의 삼막사, 그리고 북쪽의 승가사가 바로 그곳입니다. 과거에는 국가적으로 경사롭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사찰들에서 부처님께 국운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지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 시내는 황폐해졌고, 부처님을 섬기는 이들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9·28 서울 수복 이후, 대한민국에는 두 가지 새로운 물결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는 과학만능의 물질문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원조 물품 분배처가 되면서, 가난한 백성들은 믿음과 상관없이 그곳을 찾았습니다. 선교사들은 밀가루와 옷가지를 나누며 4차원적인 영감술을 과학적 방식으로 전파했습니다. 옛날 무당의 굿은 미신으로 치부되었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는 종교는 과학적인 신앙으로 여겨졌습니다.
점차 목사와 장로들은 사찰을 찾아 충격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탑 위에 앉아 오물을 배설하고 부처님 상에 소변을 보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따라하던 아이들은 더욱 극단적으로 나아가 돌부처의 목을 자르고, 흙부처의 눈을 파내며, 나무 부처를 불태우는 등 충격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이때 영수라는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북악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전쟁으로 부러진 붉은 소나무 가지를 찾다가 어느새 승가사에 도착했습니다. 폐허가 된 절은 스님조차 없는 쓸쓸한 공간이었고, 부처님들만이 고요히 좌정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하자 영수는 비웃듯 핀잔을 주었습니다.
"야, 이 바보들아! 돌부처나 흙부처가 뭘 안다고 거기에 절을 하냐?"
한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그런 소리 마! 우리 어머니가 여기서 불공 드리고 나를 낳았대!"
영수는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이 만들지, 부처님이 만들 리 없어! 부처님이 말을 할 줄 아냐?"
영수는 부처님 동상 위에 올라가 말을 타듯 자세를 취했습니다. "봐라! 부처님께 영험이 있다면 나를 때리고 꾸짖으실 텐데?" 그러며 낫을 들고 열여섯 나한님들의 눈을 차례로 도려냈습니다.
친구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영수의 확신에 압도되어 더는 절하지 못하고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영수는 나한님들의 눈을 파다가 지치자 친구들에게로 달려갔고, 그때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친구들은 너무나 놀라 시신 조각도 수습하지 못한 채 도망쳤습니다.
영수의 어머니는 지금도 승가사에 다니며 아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수가 나한님들의 눈을 판 벌로 지뢰를 밟아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그가 사탄의 눈알을 뺀 공로로 천국에 올랐다며 칭송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함께 나무를 하러 갔던 승가사 주지 이길수 스님의 증언입니다. 그때 함께 있던 아이들 중 다섯 명은 이 충격적인 사건 후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심월 스님에게 귀의해 출가했으며, 그중 두세 분은 아직 살아계십니다.
사람의 생사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처님이 벌을 주고 하느님이 상을 내리실까요? 사실 벌을 받는 것도, 상을 받는 것도 모두 스스로의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핵심은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부처님의 눈을 해치는 행동은 분명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천국에 가기 위해 애쓰는 마음 역시 진정한 자아와는 거리가 멉니다. 과연 자비로운 부처님께서 벌을 내리시겠습니까? 벌을 받았다고 여기는 것도,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일 뿐입니다.

만약 왜곡된 마음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 어떤 착오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의 마음이 피어나면 사탄의 세계가 보이고, 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면 지뢰마저도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부처님의 눈에는 오직 부처님만이 보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불심이 부족한 중생은 천국에 올라가더라도 여전히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를 수밖에 없으니, 그 마음이 편할 리 만무합니다.
북악의 찬란한 성지에서,
부처님을 진정한 부처님으로 보지 못하고 신상으로만 바라본 것은
그의 마음속에 신에 대한 집착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은 벌하거나 상주는 마음이 없으니
사람이 스스로 상과 벌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상벌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기쁨과 슬픔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속편 영험설화>
[네이버 지식백과] 나한님들의 눈을 파고 폭탄 맞아죽은 사람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영수 아이의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종교적 갈등, 개인의 행동과 그 결과, 그리고 진정한 깨달음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 핵심 키워드들을 함께 살펴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핵심 키워드 및 설명
종교적 갈등과 훼손 : 6.25 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 유입된 물질문명과 기독교의 영향으로 전통 불교가 쇠퇴하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사찰과 불상에 대해 노골적인 훼손 행위를 벌이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는 종교 간의 이해 부족과 배타적인 태도가 어떻게 물리적, 정신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상징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불상을 훼손하는 장면은 무지와 왜곡된 신념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영수의 어리석은 행동과 그 대가 : 영수라는 아이가 불심을 조롱하고 낫으로 나한상들의 눈을 파내는 행위는 종교적 상징물에 대한 극단적인 모독이자, 자신의 주관적인 믿음만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이야기 속에서 영수가 결국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러한 행동에 대한 '대가' 혹은 '업보'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층적인 죽음의 해석 : 영수의 죽음에 대해 불교계와 기독교계에서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불교에서는 '나한님들의 눈을 판 벌'로 보지만, 기독교에서는 '사탄의 눈알을 뺀 공로로 천국에 올랐다'고 칭송합니다. 이는 사건 자체의 객관적인 사실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개인이나 집단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진실이 다르게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주관적인지를 강조합니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상과 벌 (주관적 인식) :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되는 핵심적인 통찰은 '벌을 받는 것도, 상을 받는 것도 모두 스스로의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부처님은 상과 벌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왜곡된 마음으로 세상을 볼 때 오해와 착오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마음이 피어나면 사탄의 세계가 보이고', '부처님의 눈에는 오직 부처님만이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경험과 결과는 우리의 내면 상태와 주관적인 인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수의 이야기는 단순히 종교적 믿음을 넘어서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내면의 성찰과 진정한 지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참으로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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