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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교용어사전 (구종식 – 귀의)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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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구종식 – 귀의)

 

 

#구종식(九種食)---9가지 음식. 처음 하나는 육체를 단련하는 음식이고, 나머지 8가지는 심신을 북돋우거나 수련하는 것으로 식(食)이라 하나 음식은 아니다.

단식(段食) - 씹어서 먹는 형상이 있는 먹을거리. 사람이나 짐승이 먹는 음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촉식(觸食) - 기쁘고 즐거운 감정을 일으키는 감촉에 의해서 몸과 마음을 기르는 것.

사식(思食) - 사상이나 희망에 의해 몸을 충족시키는 것.

식식(識食) - 마음의 힘으로 능히 몸을 부지하는 것.

선열식(禪悅食) - 수행하는 수행자가 그 힘으로 몸을 지탱하는 것.

법희식(法喜食) - 불법에 의해서 몸과 마음을 기르는 것.

원식(願食) - 소원에 의해서 목숨을 이어가는 것.

염식(念食) - 수행하는 사람이 지혜를 증익(增益)하는 것.

해탈식(解脫食) - 불도를 증득한 이가 열반의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

 

#구중(九衆)---비구ㆍ비구니ㆍ사미ㆍ사미니ㆍ식차마나ㆍ우바새ㆍ우바이의 7중(衆)에 출가(出家)ㆍ출가니(出家尼)를 더한 것. 출가ㆍ출가니와 비구ㆍ비구니와의 구별은 확실하지 않음.

 

#구지(九地)---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3계(界)를 9종으로 나눈 것.

욕계오취지(欲界五趣地) - 욕계 안에 있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5취(趣)를 합해 1지(地)로 한다.

취(趣)---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악업을 짓고, 그 업인으로 말미암아 끌려가서 사는 곳.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을 말함. 욕계를 떠남으로 말미암아 희(喜)ㆍ낙(樂)의 느낌을 내는 곳.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 - 색계 제2선천(禪天)을 말함. 정(定)에서 즐거움을 내는 곳.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 색계 제3선천. 2선(禪)의 희락을 여의고 마음이 안정돼 묘한 즐거움이 있는 곳.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 색계 제4선천. 앞의 즐거움을 여의고 청정 평등한 사수(捨受)의 생각에 안주하는 곳.

사수(捨受)---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 - 무색계에서 색(色)의 속박을 싫어하는 마음에 색상(色想)을 버리고 한없는 허공을 반연(攀緣)하는 선정을 닦는 곳.

반연(攀緣)---인연에 의지하고 이끌림. 휘어잡고 의지하거나 기어 올라감.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 - 다시 공(空)인 생각을 버리고 심식(心識)이 끝없이 확대되는 관상(觀想)에 머물러 선정을 닦는 곳.

심식(心識)---마음 작용을 심식이라 한다.

관상(觀想)---관상이란 내적 관조를 통해 진리를 직관적(直觀的)으로 인식하는 행위를 말한다.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 식이 무변하다는 주관적인 식상(識想)마저 버리고 그 무엇에도 얽매임이 없는 무소유의 경지를 관찰하여 머무는 선정을 닦는 곳.

식상(識想)---마음속에 형성된 어떤 개념.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 - 앞의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는 식(識)이 한없이 확대됨을 관함으로 유상(有想)이고, 다음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는 식의 비존재를 관함으로 무상(無想)인데, 그 유상을 버림으로 비상(非想)이라 하고, 그 무상을 여의므로 비비상(非非想)이라 한다.

 

#9차제정(九次第定)---<대지도론(大智度論)>에 나오는 이론으로 차제정(次第定)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순 차적인 수행단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삼매수행은 여덟 단계로 나누어져 있고, 차원이 높아질수록 번뇌가 정화된 다. 이를 팔선정(八禪定) 혹은 팔등지(八等地)라고 하는데, 초선ㆍ이선ㆍ삼선ㆍ사선 ․ 공무변처선(空無邊處禪)ㆍ식무변처선(識無邊處禪)ㆍ무소유처선(無所有處禪)ㆍ비상비비상처선(非想非非想處禪)의 단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팔선정을 닦은 후 다시 그 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행단계인 멸진정(滅盡定)에 이르는 것을 구차제정(九次第定)이라 불렀다. 부처님은 구차제정이라는 선정을 통해 중생들의 세계는 중생들의 마음에서 연기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중생들의 세계인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三界)는 구차제정을 통해 드러난 중생 세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 사무색처(四無色處), 멸진정(滅盡定) 참조.

<9차제정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 석가모니는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초선에 들면 말이 그치며-(제1선)

이선에 들면 생각 일으킴과 추론적 사유가 그치며-(제2선)

삼선에 들면 희열이 그치며-(제3선)

사선에 들면 입출식(入出息)이 그치며-(제4선) → 4선정을 닦으면 색계18천에 태어남,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면 물질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제5선)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면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제6선)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면 식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제7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면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이 그친다-(제8선) → 4무색선정을 닦으면 무색계4천에 태어남(여기까지가 8등지)

8등지에 멸진정(滅盡定)을 더한 것이 9차제정이다.

멸진정(滅盡定)을 상수멸(想受滅) 혹은 멸수상정(滅受想定) 이라고도 하는데, 이에 들면 인식과 느낌이 그친다. 즉 열반에 이른 것이다. 이 수행과정이 9차제정이다.

구해탈(俱解脫)

 

#구해탈(俱解脫)---‘구(俱)’란 두 가지의 것이 얽혀 있다는 의미이다. 지혜에 의한 해탈인 혜해탈(慧解脫)과 또 하나 정(定)에 의한 해탈이다. 특히 정 중에서도 최고도의 정까지도 체험한 정해탈(定解脫)이 합쳐졌을 때에 구해탈이라 한다. 번뇌에 의한 장애나 선정에 의한 해탈의 장애, 즉 평범한 사람의 선정의 한계를 극복할 때에 나타나는 해탈이다.

지혜의 힘에 의해 이 세상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의 문제나 타인의 문제마저도 해결할 수 있는 경지가 되고, 나아가 선정도 깊어져서, 그리하여 차츰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고 본래의 세계에 자유자재로 오갈 수가 있게 되는 데까지 간다. 그리하여 멸진정(滅盡定)이라고 불리는 최고도의 선정까지 들어가면, 이른바 대우주의 생명 과 일체가 되는 경지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이 대우주와 일체가 돼 녹아 들어가는 듯한 선정을 경험하는 것이 다. 이런 이른바 「불타의 깨달음」을 얻는 경우를 가리켜 구해탈이라 한다. 좀 어려운 말로는 수행자가 무색정(無色定)을 얻어 해탈했을 때에는 구해탈(俱解脫)이라고 불린다.---→정해탈(定解脫) 참조.

 

#구화산(九華山, 해발 1,342m)---중국 4대 불교 명산의 하나로서, 중국 내륙의 산악지대인 안휘성 청양현에 있다. 신라 제33대 성덕왕의 아들 김교각(金喬覺, 697년~794년) 스님이 성불하신 곳이다. 구화산 월신보전(月身寶殿)에 모신 남무대원지장왕보살(南無大願地藏王菩薩)이 바로 신라 출신 김교각 스님이다.---→김교각(金喬覺) 참조.

※중국 불교 4대 성지---산서성 오대산(2,893m, 문수보살 성지), 사천성 아미산(3,099m, 보현보살 성지), 절강성의 보타산(291m, 관음보살의 성지), 그리고 이곳 안휘성의 구화산(1,342m, 지장보살 성지).

 

#군다리명왕 (軍茶利明王, 산스크리트어 Kundali)---명왕(明王)이란 교화하거나 구제하기 어려운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여래나 보살이 무서운 형상으로 변신하여 나타난 화신이다. ‘명(明)’은 명주(明呪), 즉 진언(眞言)을 말한다. 군다리명왕은 오방 중 남방(南方)에 배치된 명왕이며, 머리 하나에 팔이 여덟이고 두 다리에는 12마리의 뱀이 휘감겨있다. 이 뱀은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를 나타낸다고 한다. 모든 아수라(阿修羅)와 악귀(惡鬼)를 항복시킨다고 하며,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명왕이다.

 

#군다리보살(軍茶利菩薩)---천수경에 나오는 보살. 보배병을 들고 있으며, 일체 고액을 제도해 주는 일을 맡아서 자비를 펴는 보살이다. 즉, 우주의 중심에서 파멸과 고통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엄히 막아내고 선(善)을 굳건히 지켜가는 임무를 담당하는데, 별나라마다 침입을 일삼는 악마를 무찌르고 선을 지키는 일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 급한 보살이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불교에 편입된 대표적인 보살이다.

 

#권교(權敎)---여기서 ‘권(權)’은 가(假) 또는 방편(方便)이라는 뜻으로서 방편을 사용할 때 쓰는 말이다. 권교란 대승의 진정한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방편으로써 가르침을 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권교는 대승의 진정한 가르침인 실교(實敎)에 대칭되는 말이다.

 

#권지(權智)---부처와 보살이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

 

#권청(勸請)---일반적으로는 신불(神佛)의 내림(來臨)을 비는 것을 권청이라 한다. 그러나 불교에선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에게 설법을 해 주기를 원하거나 열반(涅槃)에 들려는 부처님에게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물러 주기를 원하는 것을 일컫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이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범천왕(梵天王)이 그 깨달음의 경지를 널리 대중에게 설해 주시기를 권했던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권현(權現)---산스크리트어 avatara를 번역한 말로서 화신(化身), 권화(權化)와 같은 말이다. 부처님이 세상 사람 들을 구제하기 위해 불보살 등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불ㆍ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부러 신(神)으로 변 해 나타나는 것.

 

#귀자모(鬼子母)---어린아이를 수호하는 신. 본래 아이들을 잡아먹는 나찰귀신이었으나 부처님이 그녀의 막내아들을 감추고 교화한 결과 부처님께 귀의했다.

 

귀의(歸依, 산스크리트어 namas)

 

#귀의(歸依, 산스크리트어 namas)---부처님이나 스님에게 귀순해 의지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역해서 남무(南無)로 표현한다. 남무란 말은 산스크리트어 namas, 즉 ‘돌아가 의지함[歸依]’을 뜻하는 말로서 한자로 옮길 때 소리에 가깝게 ‘남무’라고 옮겼다. 그런데 ‘남’보다 ‘나’가 원음에 가까우므로 ‘나무’라 읽는 것이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