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사전 (기신론 – 끽다거)

#기신론(起信論)---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줄인 말. 대승불교의 개론서. 인도의 마명(馬鳴, 100∼160?)이 저술했다고 하나 그의 생존연대가 불확실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참조.
#기신론소(起信論疏)---<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국가나 종파를 초월해 널리 유포됐고, 이에 관한 주석서가 수백여 종이 되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기신론삼소(起信論三疏)」이다. 즉, 중국 혜원(慧遠, 523∼592)의 주석서인 <정영소(淨影疏)>, 신라 원효대사의 주석서인 <해동소(海東疏)>, 그리고 중국 화엄학의 대가 법장(法藏, 643~712)의 <현수소(賢首疏)>의 셋이 곧 그것이다.
기신론의 3소 중 원효의 <해동소>는 그 내용에 있어서 단연 혜원의 <정영소>를 능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신론 주석의 백미라 일컫는 법장의 <현수소>도 <해동소>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대목이 허다하며, 원효의 견해를 표현만 바꿔 재정리한 면도 적지가 않다. 따라서 원효대사의 <해동소>가 단연 으뜸이다.
※현수소(賢首疏)---원래 이름은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이다. 그런데 지은이 법장(法藏, 643~712)의 별명이 현수(賢首)이므로 <현수소>라고 한다. 법장(法藏)의 조상은 서역의 강거국(康居國) 출신이다. 그래서 법장을 강장국사(康藏國師)라고도 한다.
#기야(祇夜)---산스크리트어 geya, 팔리어 geyya의 음사. 중송(重頌)이라 번역. 경전의 서술 형식에서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설한 것.---중송(重頌), 게송(偈頌) 참조.
#기연(機緣)---계기, 동기와 비슷한 말. 깨달음을 얻게 된 동기, 깨닫게 된 계기를 말한다.
#기원정사(祇園精舍, 범어로 Jetavana)---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왕사성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을 때 중인도 사위국(코살라국;舍衛國)의 장자이자 대신인 수닷타(sudatta, 수달/須達)가 죽림정사로 찾아가서 부처님께 자기네 나라인 사위국에 가서도 설법을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사를 지어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부처님이 정사가 완성되면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급고독은 원래 배화교 신자였다가 부처님의 제자가 됐는데, 그의 집은 큰 부자로서 재보가 한량없었고, 어려운 이에게 항상 옷과 음식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고독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자’라는 의미의 아나타핀디카(Anāthapiṇḍika=급고독/給孤獨)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부처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수보리(須菩提)가 바로 급고독 장자의 조카이다.
부처님께 약속을 하고 귀국한 급고독이 정사를 지을 곳을 물색한 결과 그가 택한 곳이 사위성(舍衛城:쉬라바스티) 남쪽 1.6km 지점에 있는 곳인데, 하필이면 그곳이 마가다국의 기타태자(祇陀太子)의 땅이었다. 그 땅을 흥정하다가 기타태자와도 뜻이 맞아 함께 정사를 지어드렸다. 그래서 정사 이름은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祇園精舍)이라 했다.
이후 부처님께서는 이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에 오래 머물며 교화를 했고, 우기(雨期)의 안거를 자주 이곳에서 행했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사위국의 파사닉왕(波斯匿;파사세나디)도 부처님의 제자였다.
#기타祇陀태자---석존 생존 시 사위국의 급고독(給孤獨) 장자와 더불어 부처님께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드린 마가다국의 태자이다. 그러나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은 없다.
#긴나라(緊那羅, 산스크리트어 Kiṃnara)---인도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신. 진타라(眞陀羅), 견타라(甄陀羅) 등으로 음역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이다. 의인(擬人) 혹은 인비인(人非人)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이 아닌 데서 유래한 말로서 나중에 이 말이 주는 인상 때문에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짓을 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했다.
#길상(吉祥 = 수리)---‘길사유상(吉事有祥)’이라는 말을 줄인 말이고, 산스크리트어 śrī의 의역으로서 ‘경사스러움’, ‘번영’, ‘행운’, ‘아름답고 착한 징조’라는 뜻으로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남을 위해 축원해주고 찬탄을 하는 것이 길상의 진정한 의미이다. 상대방을 칭찬하고 축원하는 말이면 모두 ‘수리’의 뜻이다. “행복하십시오, 훌륭하십니다, 장하십니다, 성공할 것입니다, 잘될 것입니다” 등의 칭찬과 찬탄과 상대방을 향한 긍정적인 격려의 표현은 모두 ‘수리’ 속에 포함된다.
#길상존(吉祥尊)---범어 ‘수리=길상(吉祥)’한 존자(尊者)라는 뜻이다. 따라서 ‘좋은 조짐을 주실 존자이시여’라는 뜻이고, 결국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혹은 문수보살을 뜻한다.
#길상천(吉祥天)---인도의 브라만교 및 불교에 등장하는 여신. 길상천녀(吉祥天女) 또는 공덕천(功德天)이라고도 한다.
원래 인도 신화에서는 비슈누신(神)의 아내이고, 애욕의 신 카마의 어머니이며, 행복을 주관하는 여신이었다. 그러다가 불교에 수용된 후로는 복덕을 주는 여신이 돼, 이 천녀(天女)에게 공양을 하면 누구나 복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밀교에서는 비사문천(毘沙門天)의 비(妃)로서 북방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형상은 일정하지 않으나 아름다운 얼굴에 천의(天衣)를 걸치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길장(吉藏, 549~623)---중국 삼론종(三論宗)의 조사(祖師)이며, 가상대사(嘉祥大師)라고도 불린다. 남북조시대의 사회적 혼란과 전란 속에서도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삼론종의 근본 문헌들에 대한 주석서인 〈삼론현의(三論玄義)〉를 저술해 삼론종(三論宗)의 교리를 대성했다. 그는 수(隋) 양제(煬帝)에 의해 수도인 장안(長安)으로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많은 승려와 일반 신도들을 위해 강론했다.
#김교각(金喬覺, 697년~794)---중국에 지장(地藏) 신앙의 성지로 이름난 곳이 내륙의 산악지대인 안휘성 청양현에 위치한 구화산(九華山)이다. 그곳에서 신라의 왕자 출신 김교각 스님이 철저한 두타행을 닦아 중국인들로부터 지장보살의 화현이라 불리었다. 스님은 99세의 나이로 좌탈입망했는데, 그 후 3년이 지나도록 시신이 썩지 않고 고스 란히 남아 있자, 그가 열반하기 전 유언대로 그 육신에 개금해 육신보살(肉身菩薩)로서 김지장(金地藏)으로 모셔지게 됐다.
김교각 스님의 속명은 김중경(金重慶)이고, 697년 신라 제32대 효소왕 4년에 서라벌 궁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33대 성덕왕이고, 그의 이복동생 두 사람은 제34대 효성왕과 제35대 경덕왕이다.---구화산(九華山) 참조.
#까비르(Kabir, 1440~1518)---까비르는 가난한 과부의 사생아로 태어나서 일찍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는 베짜는 직조공이었던 회교도 집안에서 자라서 평생 베를 짜며 평범한 삶을 살다 갔지만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인도 민중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글을 배우지 않아 단 한 줄의 시(詩)도 손수 글로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영혼의 말들은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서 구전으로 전해져서 인도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존경받고 있다. 그리하여 시성이라 일컫는 타골과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했다. 까비르의 시는 타고르에 의해서 세상에 널리 퍼졌다.
#깨달음이란--- 불교 역사 2600여년 가운데 가장 많은 질문이고, 가장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여기선 간단 명료한 아주 기본적인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깨달음이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탐(貪)ㆍ진(瞋)ㆍ치(癡)의 소멸이고, 이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 가치인 무상(無常)ㆍ무아(無我)ㆍ공(空)ㆍ견성(見性)을 의미한다.
<수타니파타(경집/經集)>에서 부처님은 왜 자신이 깨달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밝히신 바 있다. “나는 알아야 할 바(苦聖諦)를 알았고, 닦아야 할 바(道聖諦)를 닦았고, 버려야 할 것(滅聖諦)을 버렸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붓다(깨달은 사람)이다.-수타니파타 558게” 이는 곧 깨달음은 ‘사성제를 철견(徹見)’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율장(律藏),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등에서는 부처님은 연기법을 통해서 정각을 이루셨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연기법을 깨달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연기의 가르침은 무아(無我)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깨달음이란 ‘사성제=연기=무아를 깨달아 탐ㆍ진ㆍ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하나는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새로 말들어낸다는 창조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미 있어 왔던 진리에 대한 발견이라는 점이다. 부처님은 연기법을 설명하면서 “연기의 법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지은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건 나오지 않건 간에 이 법은 존재의 이법(理法)으로서 존재와 더불어 있어 온 것이다.”라고 하셨다. 여래는 다만 이 법을 자각해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이란 ‘진리에 대한 눈뜸’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승불교, 특히 선종에 와서는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바로 봄으로써 부처가 된다[견성성불(見性成佛)]’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위의 내용들을 관통하는 깨달음이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자기 자신의 발견’이라고 정의해야 하겠다.

#끽다거(喫茶去)---‘차나 한잔 마시라’라는 뜻이다. ‘끽다(喫茶)’는 차를 마시라는 말이고, 거(去)는 명령형 조사이다. 중국 당나라 때 ‘무(無)’자 화두로 유명한 조주(趙州, 778~897)선사의 선문답에 유래된 말이다. 조주 선사가 ‘차나 한잔 마시라’고 한 것은 꾸지람으로서, ‘너의 주인공은 어디에 두었느냐? 정신 차려라’ 하는 뜻이다. 꽤 까다로운 공안으로 알려져 있다.
일체의 관념과 분별을 여의고 텅 비어 있는 조주에게 이런 저런 걸 물으러 오니 답할 게 없다. 그러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 네가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은 너 속에 다 있는데, 엉뚱한 곳에 와서 묻고 찾으려 하느냐 하는 말이다.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여(茶禪一如)의 극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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