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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교용어사전 (난행도 – 늑나마제)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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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난행도 늑나마제)

 

 

난행도(難行道)

 

#난행도(難行道)---AD2~3세기경의 용수(龍樹), 4세기경의 세친(世親) 등의 글에서 불법(佛法)을 일반 세상의 도()에 준해 난()ㆍ이()의 둘로 나눈 바 있어 이에 힌트를 얻어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담란(曇鸞, 476~542)은 세친의 <정토론(淨土論)>에 주석을 달아 <정토론주(淨土論注)>를 써서, 수행을 난행도와 이행도(易行道)2도설을 제기했다. 그리하여 외부의 힘에 의한 범부가 왕생할 수 있는 이행도를 역설함으로써 타력본원의 정토교의 교의를 처음으로 천명했다.

수행의 길에 있어서 자력에 의해 성불을 추구하는 것을 난행도 불보살의 원력에 의지해 수행해 가는 것을 이행도라 하는데, 난행도는 근기가 수승한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고, 이행도는 근기가 약간 미천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불교는 일반적으로 자력에 의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난행도의 종교로 알려져 있는데, 불보살의 원력에 의한 이행도가 시설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세속 중생은 근기가 다양하고 저열해서 누구나 높고 수승한 난행도를 성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이행도(易行道),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 참조.

 

#남섬부주(南贍浮洲)---남염부주라고도 하는데, 불교의 세계관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땅을 말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 주변에 네 곳의 땅이 있는데, 그 가운데 남쪽에 있는 땅을 이르는 말이다. 이곳에만 인간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염부(閻浮)라는 수목이 많이 자라는 곳이라서 염부주라고도 한다. 본래 염부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므로 남섬부주는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를 상징하는 말로 추정된다.---염부제(閻浮提) 참조.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남종선(南宗禪)의 거봉으로 제7조로 일컬어지고 있다. 육조 혜능대사의 사법(嗣法) 제자 10인 가운데 가장 먼저 거론되는 중요한 인물이며, 그의 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은 항상 좌선(坐禪) 하는 것만을 고집해 자리를 뜨는 법이 없었다. 이에 회양선사가 하루는 좌선 중인 마조(馬祖)에게 말을 건넸다. “수좌는 좌선해 무엇 하려는고?”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자 회양 선사가 암자 앞에서 벽돌을 하나 집어 와서 마조 옆에서 묵묵히 갈기 시작했다. 마조가 한참 정진을 하다가 그것을 보고는 여쭈었다.

스님, 벽돌은 갈아서 무엇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고자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할진대,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소를 수레에 매서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마조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회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가, 좌불(坐佛)을 배우는가?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면 선()은 앉거나 눕는데 있는 것이 아니니 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앉은 부처를 배운다고 한다면 부처님은 어느 하나의 법이 아니니 자네가 부처님을 잘못 알고 있음이네. 무주법(無住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 하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고,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선()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네.”

마조는 여기에서 크게 뉘우치는 바가 있어서 좌선만을 고집하던 생각을 버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가운데서 일여(一如)하게 화두를 참구해 순일(純一)을 이루어서 마침내 크게 깨쳤다.

 

#남염부주(南閻浮州)---남섬부주 참조.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스리랑카에 전해오던 패엽경(貝葉經)<팔리어 삼장(三藏)>을 말한다. 팔리어 삼장은 19세기 초기부터 서양인들에 의해 연구가 시작됐으며, 1882년에는 영국에서 리스 데이비스(Rhys Davids)가 중심이 돼 런던에<Pali Text Society>가 설립돼 영역본이 출판됐다. 그리고 1935년부터 일본에서도 그 영역본을 저 본으로 해서 번역을 시작해 1941년에 6570책으로 완간해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이라 했다.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당나라시대의 선승.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130여 명 중 백장(白丈), 서당(西堂)과 함께 유명한 삼대사(三大士)의 한 사람으로 무심선(無心禪)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30여 년 간 지주(池州) 남전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밭을 갈며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자연 속에서 세상의 시비와 사상의 추구마저 잊어버리는 무심선(無心禪)을 터득해 훗날 선승들에게 고존숙(古尊宿)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그가 남긴 화두 중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 ; 남전이 고양이의 목을 베다)가 유명하다. 83587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제자로 무자(無字)화두로 유명한 조주종심(趙州從諗)을 두었다.

무심선(無心禪)---무심선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과 달리 일체의 망념을 여읜 진심(眞心)인 무심무념(無心無念)을 궁극의 경계로 삼는 선법.

고존숙(古尊宿)---선문(禪門)의 위대한 선승에 대한 존칭.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남전스님 휘하에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으로 나누어진 선방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절에 와서 동당에 가서 슬그머니 앉기도 하고, 서당에 가서 슬그머니 앉기도 했다.

이때 수행승들은 그 고양이를 서로 자기 당()의 고양이라고 우기다가 마침내 선방이 시끄러워졌다. 이에 남전은 고양이를 집어 들고 말했다.

너희들이 뭔가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죽이지 않겠지만 말할 수 없다면 베어버릴 것이다.”

이에 대중(수행승들)은 각기 이말 저말 한 마디씩 했지만 모두 남전의 기대에 어긋났다. 그래서 남전은 그 자리에서 고양이를 베어 죽였다.

헌데 저녁에 조주(趙州)스님이 외출에서 돌아와서 스승인 남전스님에게 귀가 인사를 드리자 남전이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조주에게 물었다.

, 그대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그러자 조주는 아무 말 않고 짚신 한 짝을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이를 본 남전은, “그대가 있었더라면 그 고양이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했다.

참선하다 말고 고양이 한 마리를 가지고 내 것이니 네 것이니 싸우는 한심한 대중을 보고 남전은 고양이를 집어 들고 한마디 이르라 했다. 이르면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베어버리겠다고 했다. 고양이를 살려야 하는 위급한 순간이 닥친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 이르라는 말은 우주의 본질에 대해, 진실에 대해, 마음에 대해, 도에 대해, 또는 내가 고양이를 들고 있는 뜻에 대해 어떤 것도 좋으니 알고 있는 것을 한마디 이르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흡족한 말을 이르지 못했으므로 고양이는 두 동강나고 말았다.

이 고양이 하나도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고 싸운단 말인가, 한심한 놈들아!”라는 엄한 꾸지람인 것이다.

큰 도에 발심한 사람들은 시비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한 시비의 근본을 없앨 줄 알아야 한다. 별스럽지도 않은 고양이 한 마리에 온 절의 스님들이 법석을 떨다가 애꿎은 고양이만 목이 달아났다.

그래서 훗날 설두(雪竇)선사께서 송()을 하셨다.양쪽 승당의 납자들은 모두 엉터리 중 / 먼지만 일으킬 뿐 어쩔 줄 모르는구나 / 다행히도 남전화상이 법으로 심판해 / 단칼에 두 동강이를 내 시비를 가렸네(兩堂俱是杜禪和 撥動煙塵不奈何. 賴得南泉能擧令 一刀兩段任偏頗)

그러나 외출에서 돌아온 조주는 제대로 대답했다. 바로 집신 한 짝을 머리에 이고 돌아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한 것이다. 이것이 저 유명한 조주두재초혜(曹州頭在草鞋)’라는 또 하나의 화두가 됐다. 이것을 보고 남전은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죽이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조주의 선기를 인정했다.

고양이 집어든 뜻을 집신 한 짝을 머리에 이는 것으로 대답했으니 이 뜻이 대체 무엇일까? 이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라는 화두는 조금의 티끌도 묻어있지 않는 맑은 것이라, 공연히 여기에다 이러니저러니 답을 하거나 사족을 달면 점점 더 진흙탕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고 정답과는 거리가 멀어 진다. 화두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혹 비유로도 대신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이 화두는 직접 화두를 들고 체험해야 알 수 있다. - 그래도 종잡을 수 없다면, 알음알이로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이게 선문답의 진수이니까. 더 알려면 수행을 거쳐 깨치는 길밖에 없다.

설두 중현(雪竇 重顯 : 9801052) 선사---송대의 선승으로 금나라의 외침을 받아 북송과 남송으로 갈라지던 격동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23세에 출가한 후, 운문종(雲門宗)3대조(三代祖)인 지문 광조(智門 光祚) 문하서 수행했으며, 아름답고 간결한 시어를 많이 남겼다.

 

#남종선(南宗禪)---중국 당나라시대 선종 제5조 홍인(弘忍, 601~674)에게는 걸출한 두 제자가 있었다. 신수(神秀)와 혜능(慧能)이고, 신수 계통을 북종선(北宗禪), 6조 혜능 계통을 남종선이라 했다. 북종선이 <능가경(楞伽經)>을 근거로 단계적 깨달음[점오/漸悟]을 주장하는 데 비해, 남종선은 <금강경(金剛經)>을 근거로 행동적이고 즉 각적인 깨달음[돈오/頓悟]을 주장했다. 이를 가리켜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고 하나, 후대에는 남종선이 특히 발전해 선종이라 하면 으레 남종선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내전(內典)---()ㆍ율()ㆍ논()과 어록(語錄) 등의 불전(佛典)을 말함. 이에 반해, 불교 밖의 다른 전적을 외전(外典)이라 한다. 출가인은 내전을 익히고 나서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외전을 공부한다. 출가인이 외전을 먼저 익히면, 그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다. 칼로 진흙을 베면 칼만 상한다. 출가한 사람은 일단 내전을 익히는 데에 열중하고, 내전이 어느 정도 익어서 자기 것이 됐을 때,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외전을 공부하는 것, 이게 제대로 된 순서다.

 

#냉난자지(冷暖自知)---물이 그릇에 가득 담겨 있다. 그런데 그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직접 만져 봐야 알 수 있다. 즉 깨달음의 세계는 자신이 직접 체험해 봐야 안다는 뜻. 불법(佛法)은 남에게 배워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해야 깨닫는다는 것이란 말이다.

 

#녹야원(鹿野園, 미가다야, Migadāya)---석가모니 부처님이 첫 설법을 행하신 곳.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 지금의 인도 바라나시(Varanasi) 북방 약 7에 위치한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 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드가야((Bodhgaya)에서 정각을 이루신 삼칠일(三七日) 후에 이곳에 와서 5명의 수행자에게 사제(四諦)의 법을 설하고 진리를 설해 이들의 귀의를 받은, 말하자면 첫 설법[초전법륜(初傳法輪)]을 행한 곳이다. 사르나트는 과거 사슴이 많이 살고 있어서 사슴동산-녹야원(鹿野園)이라고도 불렀는데, 아소카 왕이 불교성지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탑과 석주(石株)를 세운 뒤 뭇 신도들의 숭앙을 받아왔으며, 8세기 초 현장(玄奘)이 순례할 당시만 해도 이곳엔 정사(精舍)가 있었다고 한다.

 

#논사(論事, Kathāvatthu)---팔리어 논장(論藏; Abhidhamma-piṭaka)에는 7론이 유명한데, 그 가운데 논사가 있다. 논사에는 제3결집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견해들에 대해 검토하고 논파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논사는 제3차 결집의 교리적 측면에서의 교단 정화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장(論藏; Abhidhamma-piṭaka)---아비달마(阿毘達磨)라 음역한다. 3()인 경()ㆍ율()ㆍ논() 중의 을 일컫는 말로서 부처의 가르침과 그가 제정한 계율을 주석ㆍ연구ㆍ정리ㆍ요약한 문헌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논장(論藏)은 법취론(法聚論, Dhamasaṅgaṇi), 분별론(分別論, Vibhaṅga), 인시설론(人施設論, Puggalapaññatti), 논사(論事, Kathāvatthu), 계설론(界說論, Dhātukathā), 쌍대론(雙對論, Yamaka), 발취론 (發趣論, Paṭṭhāna) 등의 7론이 유명하다.

논장(論藏)이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고 쉽게 전하기 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요약하거나 주석을 단 것 중에서 그 시대의 붓다라 할 만한 선지식의 글을 논장이라 하여 과 같이 취급 합니다.

누진통(漏盡通)

 

#누진통(漏盡通)---육신통(六神通)의 하나. 지극한 수행 정진을 한 결과 얻게 되는 여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자재한 능력을 육신통이라 하는데, 그 중 누진통은 다른 다섯에 비해 가장 얻기 힘든 신통이다. , 앞의 5신통은 외도(外道)나 특수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얻을 수 있지만, 누진통만은 부처 또는 아라한(阿羅漢) 이상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누진통은 세계와 인생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로서, 다른 종교로서는 얻어질 수 없는 불교 특유의 초능력인 것이다. 누진통은 번뇌를 모두 끊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람이 이에 통하면 극락에 이른 것 과 같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이 누진통을 얻어 부처가 되셨으며, 깨달음을 얻은 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가 누진통을 포함한 여섯 가지의 신통력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석존은 제자들이 이러한 신통력의 사용을 금지하셨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불제자들이 이와 같은 신통을 함부로 나타내는 것을 계율로 정해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지혜의 종교이지 다른 종교처럼 기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육신통 참조.

 

#늑나마제(勒那摩提, Ratnamati)---보의(寶意)라고도 한다. 중인도 출신의 승려로, 508년에 북위(北魏)의 뤄양 (洛陽)에 와서 세친(世親)<십지경론(十地經論)> 등 총 624권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