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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교용어사전 (다라니 – 달마급다)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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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다라니 달마급다)

 

 

#다라니(陀羅尼, dharani)---일반인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주문(呪文, 비밀스러운 문구)으로서 암송하면 커다란 효험이 있다는 신성한 글귀. 부처님의 말씀을 주문 형식으로 만든 것이며, 산스크리트어로 된 글귀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독송한다.

한자로 번역하지 않는 것은 번역으로 말미암아 그 의미가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고, 신비성을 간직하기 위함이다.

다라니를 한문으로 총지(總持)ㆍ능지(能持)ㆍ능차(能遮)라고 하며, 주문의 길이가 짧은 것은 진언(眞言, mantra) 또는 주()라 하고, 긴 것을 다라니 또는 대주(大呪)라 한다.

진언은 실담문자((悉曇文字, 산스크리트문자)로 된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인 옴 마니 반메 훔이나, 개법장 진언인 옴 아라남 아라다처럼 짧으면 한 자, 길어야 두 세줄 정도에 불과하지만 다라니는 훨씬 길다. 예컨대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능엄경>의 능엄신주(楞嚴神呪)처럼 상당히 길다.

다라니(陀羅尼, dharani)

 

#다라수(多羅樹, 산스크리트어 tāla)---종려과(야자수)에 속한 나무 이름. 인도 남부ㆍ 스리랑카 등지에서 자라는 열 대식물임. 가지가 없으며 높이는 30m에 달한다. 자라는 꽃 이삭을 자르면 즙액이 나오는데, 이 즙액은 설탕의 원료로 쓰고 발효시키면 럼(rum)이라는 술이 된다. 또 이것을 증류한 것이 아라크(arrack)라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술이다.

그 잎은 고대 불경을 새기는 종이 역할을 했으며, 종이보다 습기에 강해 보존성이 뛰어나다. 이 잎을 패다라(貝葉, 貝多羅葉, pattra)라 한다. 패다라 잎을 너비 6.6cm, 길이 66cm 정도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잘라 앞면과 뒷면에 모두 송곳으로 글자를 새기고 기름을 바르면 기름이 스며들면서 글자가 나타난다. 이렇게 불경을 새긴 잎 끝에 구멍을 뚫어 꿰매면 패엽경(貝葉經)이 된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이 나무로 높이의 척도로 삼기도 했다.---패엽경(貝葉經) 참조.

 

#다보불(多寶佛)---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부타라트나(Prabhutaratna)이며, 동방 보정세계(寶正世界)의 교주다. 대보불(大寶佛)이라고도 하며, 일정한 모습은 없다. <법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 나온다. 이 다보불이 과거에 보살로 있었을 때 서원을 세우기를 내가 장차 입멸하면 온몸 그대로 사리가 돼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는 장소에는 반드시 출현해 그 설법의 위력을 증명하리라고 했다.

그리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해 법을 설할 때마다 보탑(寶塔)의 모습으로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와 같이 다보불은 <법화경>을 설하는 자리마다 보탑의 모습으로 솟아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부처이다. 따라서 다보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다보탑은 언제나 석가탑 옆에 쌍으로 안치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불국사의 다보탑이 석가탑 옆에 쌍으로 있다.

 

#다비(茶毘)---산스크리트어 자피타(Jha-pita)를 음역한 말. 불에 태운다는 뜻으로, 시체를 화장(火葬)하는 일을 이르는 말.

 

#단견(斷見, 산스크리트어 uccheda-drsti)---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가 뿌리박고 있다. 그 하나가 단견으로서 나와 세상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사라질 뿐이라는 허무론에 빠지는 극단적인 견해이다. , 모든 존재가 무상(無常)해 허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죽으면 심신이 모두 없어져서 공무(空無)에 돌아간다는, 존재 자체를 아주 없는 것으로 끊어 없애버린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다른 하나는 나와 세상은 영원 하다고 여기는 상견(常見)이다. 초기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르침이 단견과 상견이다. 그런데 연기법은 단견에도 상견에도 떨어지지 않는 중도이다.

 

#단경(壇經)---육조단경(六祖壇經) 참조.

 

#단말마(斷末魔)---‘단말마란 말마를 끊는다는 말이다. ‘말마(末魔)’는 범어 marman로서 육체의 관절이나 육체의 치명적 부분, 즉 급소를 의미한다. 이것을 건드리거나 부딪치면 심하게 아파서 죽거나 발광한다고 믿었다. 단말마는 그 급소가 끊어진다는 말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수()ㆍ풍()ㆍ화() 삼대(三大) 중에서 한 종류가 유달리 많아지고, 그것이 말마와 부딪쳐 목숨이 끊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죽기 바로 직전 빈사상태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단말마의 고통이라고 한다.

 

#단멸공(斷滅空)---()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을 단멸공 또는 악취공(惡取空) 이라 한다. 그리고 더러 단멸공을 무기공(無記空)과 비슷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무기공이란 공에만 집착한 나머지 무념(無念)의 지혜가 아닌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 공사상(空思想)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빈 마음으로 앉아 있음을 무기공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할 것은 공에 집착하면 단멸공이라는 삿된 소견에 떨어져 어둡고 명료하지 못한 무지에 빠져 미혹한 어두움(無明)에 싸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변견(邊見), 즉 한쪽에 치우쳐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라고 하는 것이다.---무기공(無記空) 참조.

 

#단멸론(斷滅論)---석존시대에 일반 사상계에서 주장한 이론인데, 특히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의 아지타(Ajita) 등의 주장이다. 단멸론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해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정통 바라문적인 아(, atman)의 상주(常住)를 인정하는 설과는 반대로 아()ㆍ영혼은 신체의 파괴와 함께 완전히 단멸ㆍ소실해 사후에 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이다.

이러한 이론은 불교에서의 무아(無我)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켜 불교적 가르침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붓다는 사후 세계(내세)를 부정하지 않았고, 특히 업의 과보를 강조함으로써 단멸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지타(Ajita)---본명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 고대 인도의 반()브라만적 자유사상가인 육사외도(六師外道) 중 한 명으로 유물론자이다. 그는 인간은 땅ㆍ물ㆍ불ㆍ바람 등의 네 가지 원소로 구성돼 있고, 그것들은 인간이 죽은 후, 각각의 집합체로 돌아가며, 시체가 화장된 후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영혼이 나 내세를 부정하고, 또 선악업(善惡業)에 의한 과보도 부정했다.

단멸론(斷滅論)

 

#단월(檀越)---산스크리트어 다나파티(danapati)을 음역한 것으로 시주(施主)라 번역한다. 사찰이나 승려에게 물건 따위를 봉양하는 일.

 

#단주(短珠)---54개 이하의 구슬을 꿰어 만든 짧은 염주.

 

#달라이라마(Dalai-Lama)---티베트 불교(라마교)의 가장 대표적 종파인 겔룩파(거루파/格魯派, 황교)의 수장(首長)인 법왕(法王)의 호칭. ‘달라이는 바다를, ‘라마는 스승을 뜻한다. 달라이라마는 영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위까지 가진다. 현재의 달라이라마는 제14세로서 중국군의 진주로 한때는 새 체제에 복종했으나, 1959년 측근과 함께 인도로 탈출, 다람살라에 망명정권을 수립해 현재에 이르렀다.

 

#달마(達磨, dharma)---인도의 고전인 <베다>에서 사용된 법()이라는 말로, 자연계의 법칙, 인간계의 질서를 나타냈고, 후에는 정도(正道)ㆍ정의(正義)로 변했으며, 불교에서는 법칙, 진실, 불법(佛法) 또는 제법(諸法) 등의 의미로 쓰였다.

 

#달마(보리달마/菩提達磨, ?~528)---보리달마는 산스크리트어 Bodhi Dharma를 소리 번역한 것이며, 흔히 달마대사라고 한다. 붓다의 제27대 직계 제자인 반야다라(般若多羅: ?457) 존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제28대 조사(祖師)가 됐다.

6세기 초 해로로 중국으로 건너와서 양()을 거쳐 북위(北魏)의 숭산 소림사(嵩山少林寺)에 들어가 면벽 9년의 수행을 함과 동시에 제자 혜가(慧可)를 얻어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하고, 중국 선종의 시조가 됐다. 이후 선()은 불교 발생지인 인도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크게 발전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선은 중국화 된 선불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헌데 같은 인도 출신으로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보리유지(菩提流支)는 달마대사를 시기한 나머지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더불어 AD 528년 달마를 독살했다는 말이 전한다. 이에 하남성 웅이산(熊耳山: 해발 912m)에 장사를 지냈다. 헌데 달마대사는 독살 당한 뒤 관속에 한 짝의 신발만 남기고 서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때 서역에 사신으로 갔던 송운(宋雲)이 돌아오는 길에 파미르고원에서 대사를 만났다. 대사는 주장자에 신 한 짝을 꿰어 들고 유유히 가고 있는 것이었다. “대사는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자, “서천으로 가노라. 너의 임금은 이미 돌아가셨느니라.”라고 했다.

송운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작별하고 귀국해보니 과연 임금이 승하하고 다음 왕이 즉위해 있었다. 송운이 돌아오다가 겪은 일을 왕에게 보고하니 왕은 무덤을 파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관속에는 신 한 짝만 있을 뿐이었다. 아래 글은 양 무제(梁武帝)가 달마대사를 추모하는 비문이다.

슬프도다.

보고도 보지 못했고, 만나고도 만나지 못했으니 지난 일, 오늘날에 뉘우치고 한 됨이 그지없도다.

짐은 한낱 범부로서 감히 그 가신 뒤에 스승으로 모시나이다.

 

송운(宋雲)---중국, 남북조 시기의 승려. 돈황 사람. 생몰연대 미상. 북위 말, 효명제의 사절로 중앙아시아제국을 방문했다. 낙양을 출발, 서역남도를 거쳐서 간다라 각국을 역방, 각각 국서를 봉정했으며, 대승 불전 170부를 얻어 가지고 522년 귀국했다. 그의 여행기는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 수록돼 있는데 당시 여러 나라의 사정, 불교 신앙의 상태, 불적(佛跡) 등에 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서역사정을 아는데 귀중한 자료인데, 문헌학적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다.

 

#달마급다(達磨笈多, Dharmagupta)---BC 3세기경 인도 승려, 담무덕(曇無德)이라 하기도 한다. BC 4세기경의 논사(論師)인 우바국다(優婆毱多)5대 제자 중 하나로, 처음에는 부파불교의 화지부(化地部)에 속했었으나, 법장부(法藏部)를 만들어 독립했다. 이 법장부를 담무덕부(曇無德部)라고도 한다. 담무덕은 출가한 승려가 불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계율을 자세히 기록한 불교 율전인 사분율(四分律)을 작성했다.

사분율(四分律)---담무덕이 상좌부(上座部)의 근본율 중에서 자기 견해에 맞는 것만을 네 번에 걸쳐 뽑아 엮은 율서(律書). 4대 계율서(戒律書)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