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사전 (명상과참선 – 묘법)
#명상(冥想)과 참선(參禪)---명상(冥想)이란 ‘어두울 명’과 ‘생각 상’을 써서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함’이란 뜻 이다. 명상은 마음을 편하게 가진다는 의미에 가깝고 참선(參禪)은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로 통한다. 명상은 생각이 있다고 해야 하나 참선은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한다. 명상은 마음 편하게 하는 것에 두고 참선은 하나의 생각으로 일여삼매에 들어가야 한다. 일여삼매에 들기 위해 화두를 드는데, 참선이란 화두를 들어 깨닫고자 하는 한 방법이다.
부처님께서 어째서 인간은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당하는가를 일념 화두로 고민하셨다. 즉 명상이 아닌 참선을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참선은 일념화두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차츰 그 하나 일념화두의 생각도 사라지고 생각한다는 마음도 사라지게 되면 선정이 온다. 시작이 반이라 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시작이 됐다고 하겠다. 부처님이 고행할 당시 선정에 있었을 것이므로 무념의 상태였다고 할 수는 없으나 종국에는 무념의 상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명색(名色, naamaruupa)---명색의 산스크리트어 nāmarūpa에서, na-ma는 명(名), ru-pa는 색(色)을 말한다.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심식(心識)을 명이라 하고 물질적 존재인 육체를 색이라 한다. 즉, 명(名)은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키고, 색(色)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비물질적이란 정신(마음)을 말하고, 물질적이란 몸을 말한 다. 따라서 명색은 몸과 마음을 말함이다.
그런데 행(行)을 원인으로 식(識)이 일어날 때는 결과의 마음을 말하지만 명색에서 말하는 명은 결과의 마음과 여러 전생에서 행해진 업(業)의 마음들이 포함된다. 즉 선하거나 선하지 못한 모든 마음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와 같이 명색의 발생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경전엔 오온(五蘊)을 명색이라 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색은 물질적인 것이고,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은 정신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명색은 ‘정신과 물질(육체)이 하나로 결합된 혼합물’이라는 의미로서, 정신과 육체가 한 덩어리 인 상태이다. 또한 오온도 한 덩어리로 결합돼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은 마찬가지이다.
헌데 부처님 당시에 사람들은 ‘정신과 육체는 동일한 것인가, 다른 것인가’라고 의심했었다. 붓다는 이러한 물음에 침묵했다. 정신과 물질 또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사유하는 하나의 잘못된 틀임을 직시하신 것이다. 본래 정신과 육체는 분리될 수 없다. 우주 전체가 모두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관련돼 있기 때문에 분리해서 사유하는 것은 인간의 분별심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정신과 육체는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들이 생각하는 부분을 ‘정신’이라고 하고, 변화해서 소멸해가는 부분을 ‘육체’라고 지칭한 것일 뿐이다.

#명심견성(明心見性)---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밝은 마음으로 타고난 천성을 안다는 뜻, 곧 마음을 밝혀 자기 본연의 불성(佛性)을 본다는 의미로서 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여래를 보고, 불광(佛光)을 보며, 내면의 소리를 듣고, 지혜의 경지를 얻는 것, 그러한 것이 바로 명심견성이다. 성(性)이란 우리의 본성, 우리 본래의 면목 또는 우리 본래의 힘을 가리킨다. 우리가 본래의 힘을 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모든 지혜와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곧 깨닫는다는 말이다.
※불광(佛光, Buddha Light)---깨달음의 빛으로 법신불(法身佛)을 증득한 존재로부터 나오는 정묘(精妙)한 빛을 말한다.--->불광(佛光) 참조.
#명왕(明王, 산스크리트어 Vidya-raja)---명왕(明王)이란 주로 밀교(密敎) 계통에서 모시는 밀교 특유의 존격(尊格)으로서 교화하거나 구제하기 어려운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여래나 보살이 무서운 형상, 분노하는 모습으로 변신해 나타나는 화신이다. 따라서 명왕은 분노의 상으로 표현되므로 명왕을 분노존(忿怒尊) 또는 위노왕(威怒王)으로 부르기도 한다.
명왕은 밀교가 성립하면서 등장했으며, 여래의 명을 받아 일체의 마장(魔障 : 악마의 장애)을 물리친다고 하는데, 5세기경 공작명왕(孔雀明王)이 최초로 등장했다. 여기서 ‘명(明)’은 지혜를 나타내는 말로, 신비로운 명주(明呪), 진언(眞言), 다라니를 가리킨다. 진언은 지력(智力)으로 중생들의 어두운 번뇌의 벽을 깨뜨리는 광명이다. 따라서 명왕은 주문을 관할하는 왕자(王者) 혹은 주력을 가진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자로서 지혜의 작용에 의해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불(方便佛)이다.--->공작명왕(孔雀明王) 참조.
#명행족(明行足)---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지혜(智慧)와 행(行)을 완전히 갖춘 자란 뜻이다.
#목건련(目犍連, 모옥갈라나, Maudgalyayana, 마우드갈리아야나)---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이라고도 한다. 본래 사리불과 함께 회의론자인 산사야(刪闍耶)의 제자였으나 제자들을 이끌고 불문에 귀의한 뒤 붓다의 10대 제자, 4대 성문(聲聞) 중 한 사람이 됐다. 붓다에게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불렸다. 효성이 지극해서 어머니를 지옥에서 제도한 일화로 유명하다.
#목어(木魚)---마치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속을 파고 그것을 조석예불(朝夕禮佛) 때 치며, 수중(水中) 중생의 고통을 쉬게 하는 법구로 쓰인다. 일설에는 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수행 정진하는 사람들이 잠에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을 경책하는 뜻이기도 한다.
#목우난타(牧牛難陀)---석가모니 제자의 한 사람. 본래 소를 먹이던 사람이었으므로 이런 이름으로 부른다. 그는 일찍이 소를 먹이는 목동이면서 출가해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고 한다.
#목우자(牧牛子)---보조국사(普照國師)의 호(號). 소먹이는 사람이라는 뜻.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마음을 닦는 비결을 적은 선 이론서(禪理論書).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국역해 간행한 1책이 목판본으로 있다 - 보물 제770호. 서울대학교 소장.
#목탁(木鐸)---본래는 수도승에게 교훈을 주는 뜻에서 밤이고 낮이고 눈을 감는 일이 없는 물고기를 본뜬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그 같은 연유에서 목어(木魚)와 같은 뜻인데, 주로 깨우치는데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대중을 모으는데 쓰는 신호이기도 하고, 모든 의식 집행에 있어 가장 많이 쓰이는 소중한 법구(法具)이다. 처음에는 쇠로 만들었던 것을 나중에 나무로 만든 것 같으며, 이러한 법구들은 거의 전부가 중국에 와서 선종사찰에서 부터 비롯됐다.
#몰종적(沒蹤迹)---집착 없는(무집착) 자유스러운 삶과 행동. 아무 흔적이나 자취가 없음을 말한다.
#묘각(妙覺)---가장 높은 수행단계, 보살 수행의 계위(階位)중 마지막 단계(수행을 52단계로 구분했을 때 51단계 수준의 깨침). 더 높은 곳이 없는 최고상태의 깨달음. 자기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상태. 그러므로 모든 것이 공하다는 의식조차 없는 상태이다. 모든 번뇌를 끊고 지혜를 원만히 갖춘 부처의 경지. 등각(等覺) 위에 있는 보살이 무명을 끊고 이 지위에 들어간다. 결국 묘각(妙覺)이란 불가사의한 부처의 무상정각(無上正覺)을 말한다.--->등각(等覺) 참조.
#묘길상(妙吉祥)---문수보살(文殊菩薩)을 일컫는 말이다. 문수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는 만주슈리(Majushri)이고, 문수사리(師利) 또는 문수시리(尸利)라 번역되는데, 여기서 문수(文殊)는 묘(妙)하다는 뜻이고, 사리 혹은 시리는 길상(吉祥)이라는 의미라서 합쳐서 묘덕(妙德), 묘수(妙首), 묘길상(妙吉祥)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문수보살을 묘길상보살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현재 북한의 금강산 만폭동 골짜기 높은 곳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불(磨崖佛) 이름이 묘길상이다. 높이 40m의 붉은 성벽에 양각으로 새긴 마애미륵불좌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묘법(妙法)---미묘한 법문이란 뜻. 여기서 ‘묘(妙)’란 불가사의한 것,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를 뛰어넘어 그 이면의 ‘참 말’을 전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법(法)은 교법(敎法)을 뜻한다. 즉 부처님 일생동안 설하신 법문은 모두가 묘법이 아닌 것이 없다.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부처님 말씀이 모두 알듯 말듯 하지만 결국엔 불법 모두가 묘법(妙法)이고 나아가서 우주 법계의 근본법칙이 모두가 묘법이다. 헌데 이 묘법(妙法)이라는 묘한 이치는 중생이 수행 없이 그냥 알음알이로 연구를 한다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불법의 이치가 그러하듯 스스로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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