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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교용어사전 (무루 – 무생법)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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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무루 무생법)

 

 

#무루(無漏, 산스크리트어 asâsrava)---()란 집에 비가 세다는 의미로서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적인 자극이 오면 그것에 물들어 분별과 내적인 습기로 말미암아서 번뇌에 노출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무루란 물 샘이 없다는 말인데, 구경위(究竟位 -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한 부처의 경지) 단계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간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물들지 않고, 깨끗하고 원만하고 밝음의 상태를 말한다.---반대말 유루(有漏, sāsrava)

 

#무루복(無漏福)---무루복이란 새어 나가는 일이 없는 복이다. 이에 비해 유루복(有漏福)은 새어나가는 복이다. 즉 유루복은 생노병사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누리는 한정되고 부자유한 사바세계의 복이지만, 무루복은 생노병사가 없는, 불ㆍ보살과 성현들이 누리는 걸림 없는 정토세계의 복이다.

유루복은 보시에 대한 반대급부인 대가를 바라거나 자기가 보시를 했다는 마음의 상을 짓고 보시를 하고 받는 복으로서 한정된 복이다. 이에 비해 무루복은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행한 보시로서 내가 보시를 했다는 상마저도 떠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보시바라밀를 행함으로써 이에 따라 받는 복이다. 무루복은 자신에게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혜택이 없으나 보시바라밀을 행한 복이므로 무루복은 샘물처럼 한량없고 다 함이 없는 무한정의 복이다.--->무주 상보시(無住相布施) 참조.

 

#무루업(無漏業)---깨달음에 이르게 한 청정한 수행. 번뇌의 더러움을 벗어난 언어ㆍ동작ㆍ의념(意念)을 말한다. 번뇌에 젖지 않은 순수한 업.

 

#무명(無明, 산스크리트어 Aviduya)---무명이란 글자 그대로 명(, 지혜)이 없다는 말이다. 올바른 법, 즉 진리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연기(緣起)의 이치에 대한 무지이고,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무지이다. 대승에는 진여(眞如)의 이치를 모른다. 또는 유()를 무()로 보고, 무를 유로 본다라고 정의한다.

()ㆍ진()ㆍ치()3대 번뇌 중의 치()에 해당하며, 탐ㆍ진이 정신적인 번뇌인데 비해 무명(=)은 지적인 번뇌이며, 번뇌 중 가장 근본적인 번뇌이다.

그리고 고()는 진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기므로 무명은 모든 고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생사 윤회하는 근본원인 역시 무명이다. 따라서 이 무명을 없앰으로써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하는 것이 불교의 최종 목적이다. 12연기의 경우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이 있다고 한다. 즉 무명으로 말미암아 업이 형성된다.--->(, viduya) 참조.

 

#무문관(無門關)수행---무공방(無孔房)이라고도 하는데, 4면이 벽인 방에 밖에서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최소 3개월부터 3년 동안 면벽참선하는 것을 무문관(無門關) 수행이라 한다.

무문관 수행의 유래---문을 닫아걸고 폐문정진(閉門精進)’ 하는 법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달마 대사의 면벽 9년이 시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문관이 하나의 보통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64년 당시 도봉산 천축사(天竺寺) 주지 정영(瀞暎) 스님이 무문관이라는 참선수행도량을 세우면서부터이다.

무문관(無門關)수행

 

#무문자설(無問自說)---산스크리트어 우다나(優陀那, Udana)의 번역어이다. 불경 서술 형태를 분류한 십이분경(十二分經)의 하나로서, ‘우다나란 감흥해서 저절로 나오는 말을 가리킨다. 이것을 한역한 것이 무문자설이다. 부처님이 종교적 체험에 감격한 나머지 누가 묻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그대로 말하는 형식이다. (묻는 사람도 없는데) 부처님 스스로 설한 법문이라는 뜻이다. 이를 모은 것이 <우다나경(무문자설경)>이다. <아미타경(阿彌陀經)>도 무문자설로 이루어진 경전이다.--->우다나(優陀那), 아미타경(阿彌陀經), 십이분경(十二分經)참조.

 

#무분별지(無分別智)---불법의 최고 지혜인 진여지혜(眞如智慧)는 언어나 문자로 분별하고 헤아려질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무분별의 지혜라 한다. 즉 반야의 지혜를 무분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여의 모양은 형용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으므로 모든 생각과 분별을 초월한 참 지혜로서만 알 수 있다고 해서 무분별지라고 하며, 곧 공()을 뜻한다.

무분별지(無分別智)

 

#무상(無常)---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부처님의 세계관이다.--->제행무상(諸行無常) 참조.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무상(無上)은 더없이 높다는 말, 정등(正等)은 비길 데 없다는 말, 정각(正覺)은 바로 깨달았다는 말, 그래서 무상정등정각은 더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으로서 불과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아뇩다라삼먁삼보리 참조.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무상사(無上士)---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최상의 인간, 곧 위가 없는 대사(大士)라는 뜻임.

 

#무상의경(無上依經)---이 경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 부처님의 공덕, 부처님의 세계,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 부처님만이 갖추고 있는 특징 등에 대해 설법하고 있다. 중국 양나라 때 진제(眞諦)가 번역했으며, 전체 7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상의경>은 신라불교, 특히 원효의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경전이다. 원효는 보살의 윤리에 관한 이론적 바탕을 이루는 것에 대한 그의 소()에서 무상의경의 내용을 많이 인용했다.

 

#무색계(無色界)---욕계(欲界)ㆍ색계(色界)와 함께 삼계(三界)의 하나로서 삼계 중 최고의 수행을 이룬 자만이 머무는 곳이다. , 무색계는 색계 위에 있는 물질세계를 초월한 세계로서 이곳은 오온(五蘊) 중 색()을 제외한 수()ㆍ상()ㆍ행()ㆍ식()만으로 구성된 물질을 초월한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곳은 형상과 육체를 떠나 정신만으로 깊이 선정에 든 자가 머무르는 공간인바 무념무상의 정(; 三昧)을 닦은, 즉 사무색정(四無色定)을 닦은 사람이 죽은 뒤에 태어나는 천계(天界)를 일컫는데, 이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모두 남성이지만 남근이 없다.

그리고 이 세계는 물질로 구성된 세계가 아니므로 방처(方處)ㆍ색질(色質)ㆍ사방(四方)ㆍ상하(上下)가 없는 무형의 세계, 공간적 개념을 초월한 세계이다.

따라서 무색계가 색계 위에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방처, 즉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곳이 때문이다. 그러나 과보의 우열에 따라서 공무변처(空無邊處)ㆍ식무변처(識無邊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4처로 나뉜다. 그리고 무색계엔 4()이 있고, 선정에는 4단계가 있다.

무색계(無色界)

<무색계 4- 네 가지 경지 = 사무색(四無色)>

공무변처(空無邊處) -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무색계 제1()의 경지. 물질인 육신을 싫어하고 가없는 허공의 자재(自在)함을 기뻐하며, 공이 가없다는 이치를 알고 수행해 태어나는 곳.

식무변처(識無邊處) - 공무변처를 초월해 인식작용의 무한성을 관찰하는 제2천의 경지.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무한의 의식영역. 그러면 이전에 그에게 있었던 공무변처의 미묘하고 참된 인식은 소멸한다.

무소유처(無所有處) -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체득한 제3천의 경지. 일체 식()이 끝없는 곳을 초월하면 조그만 것도 소유함이 없는 데 들어가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머문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제4천의 경지. 욕계ㆍ색계의 거친 생각은 없지만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않은 제4천의 경지.

 

<무색계 4>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 색계에서 버리지 못했던 모든 형상과 육체를 허공과 같이 관()한 결과 마음이 허공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 마음이 허공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대한 끝없는 의식만 존재하는 세계로 들어간 자가 머무는 곳이다.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 허공을 관하는 그러한 의식마저 없음, 없음이라고 관한다. 여기서는 ()의 삼매체험에 들어간 자가 머무는 곳이다.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天) - 허공을 관하는 그러한 의식이 없다고 여기면서도 다시 그런 의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상태에 들어간 자가 머무는 곳이다.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무색계 제4천의 경지. 욕계ㆍ색계의 거친 생각은 없지만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않은 무색계 제4천의 경지. 의식이 완전히 소명해 다한 것 같으나 다하지 않은 상태를 보여준다.

멸진정(滅盡定)--->멸진정(滅盡定) 항목 참조.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삼매수행은 여덟 단계로 나누어져 있고, 차원이 높아질수록 번뇌가 정화된다. 이를 8선정(八禪定)이라고 하는데, 초선ㆍ이선ㆍ삼선ㆍ사선ㆍ공무변처선()ㆍ식무변처선()ㆍ무소유처선()ㆍ비상비비상처선()으로 단계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초선ㆍ이선ㆍ삼선ㆍ사선은 아직 몸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 선정이므로 색계선정(色界禪定)이라 하고, 공무변처선ㆍ식무변처선ㆍ무소유처선ㆍ비상비비상처선은 물질의 속박은 벗어났으나 정신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 선정이므로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이라고 한다. 무색계선정을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고도 한다. 무색계는 물질적인 것도 없어진 순수한 정신만의 세계인데, 무념무상의정(: 三昧)으로서 사무색정(四無色定)을 닦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아래에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 - 무색계4선정(사무색정)을 간략 하게 살펴보겠다.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 무색계 초선정으로서 허공처럼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색계 4선정에서 벗어나 집중한 대상을 향해 끝없는 허공, 끝없는 허공하면서 물질을 대상으로 한 수행에서 벗어난다. 공무변처정이란 일체의 물질 관념을 타파하고 단지 끝없는 공간만을 - 허공이 끝이 없음을 관찰하며, ()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상태이다. 이렇게 해 우주가 텅 비어서 하나의 순수광명이 된다. 질료가 있는 광명이 아니라 그야 말로 참으로 텅 비어있는 순수광명의 경지가 바로 8선정 중 제5선정인 공무변처정이다.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 식이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무한한 의식 영역)

무색계 초선정의 고요하지 못함의 허물을 보아 무색계 2선정에 마음을 기울인다. 끝없는 허공에 따른 의식에 마음을 집중한다. 끝없는 허공이라는 선정의 대상을 벗어나서 끝과 한계의 구분이 없는 의식작용이라고 생각해 - 끝없는 의식작용의 선정에서 지낸다. , 하나의 마음이 우주에 충만해 보이는 경지가 식무변처정이다.

공처(空處)의 심경을 더욱 진전시켜 식이 무변하다는 사실을 염()하여 식() 중에 일어나는 차별상을 제거하는 수행이다. 마음의 작용이 허공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다고 관찰한다.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경지, 아무 것도 없는 영역)

식무변처정보다 더 고요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선정이다. 공무변처정의 끝없는 허공을 관하는 인식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없음, 없음이라고 하거나 조용함, 조용함이라고 거듭거듭 생각한다. 공간도 식도 초월해 아무것도 대상이 없다고 관찰하며, 일체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상태에 도달한다. 이것이고 저것이고 구분도 없고 구분할 수도 없다. 원융무애(圓融無碍)이고 혼연일체(渾然一體)라 구분할 수가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제8선정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이다.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

무소유처정에서 더욱더 정묘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선정이다. 생각이 있을 것도 없고 또 없을 것도 없단 말이다. 우리 중생이 느끼는 번뇌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생각이 조금도 없고 아주 맑고 미세한 생각만 조금 있다. 지각,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아주 미세한 단계로, 마음부수들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즉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란 일체 공()이라고 하는 상()까지도 뛰어넘어 상()도 없고 무상(無想)도 없는 데까지 수련을 진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능엄경>에 의하면 공무변처정은 몸이 장애됨을 깨달아 장애를 소멸하고 공()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장애가 소멸하고 장애가 없어졌다는 것까지 멸하면 그 가운데는 오직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미세한 반분만 남게 되는데 이를 식무변처정이라 한다.

공과 색()이 모두 없어지고 식심(識心)까지 멸해 시방(十方)이 적연해 훤칠하게 갈데가 없으면 무소유처정이라 한다. 이는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잠복된 상태이다.

아뢰야식의 종자인 식성(識性)이 동()하지 않는 가운데 다함이 없는 데서 다한다는 성품을 발명해 있는 듯하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다한 것 같으면서 다한 것이 아닌 상태가 비상비비상처정의 상태이다. 거친 생각은 없으며, 섬세하고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아니한 무색계 4선정은 조용하고 높다.

그리고 9차제정(九次第定)8선정(八禪定)에다 다시 아홉째의 멸진정(滅盡定)을 합해 부르는 말이다.

 

멸진정(滅盡定)---초기부파불교의 수행전통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단계는 멸진정 혹은 상수멸정(想受滅定) 또는 9차제정(九次第定)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초기경전(Pāli-Nikāya)의 설명에 따르면 상수멸정은 불교수행에서 나타나는 최상의 즐거움으로 모든 번뇌가 소멸되는, 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수행상태로 설명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남방불교의 수행자들은 일시적으로 조건의 소멸을 이루는 이 중지 상태를 열반의 체험 혹은 열반자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멸진정에 이르면 금생에 지은 번뇌 또는 과거 전생으로부터 잠재의식에 묻어온 번뇌까지 모두 다 뿌리 뽑아서 참 우주의 본바탕인 불성과 하나로 일치된다. 이것이 바로 인격의 완성이다. 이 멸진정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나함과 아라한 중에서도 사마타 수행이 충분히 돼 있는 분들만 해당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돼야 비로소 참다운 정각성불(正覺成佛)이 되는 구경위(究竟位)라 할 수 있다.

 

#무생(無生)---모든 현상은 연기법(緣起法)에 따라 변화하는 여러 요소들이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데 불과할 뿐 생기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무엇인가 고정된 실체가 존재가 있어야 무엇인가가 생겨난다는 말이 성립되겠는데, 고정된 실체가 없다면 생길 것도 없다. 그런데 연기법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데 불과할 뿐이라니 어떠한 존재가 태어날 수가 없다. 헌데 여기서 태어나지 않음이란 번뇌와 열반을 생기지 않음의 경지를 말함이다. 곧 무생은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다. 깨달으면 다른 헛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니 무생이다. 따라서 무생이란 무생의 이치, []이 없는 진리’, ‘불변 의 진리를 이르는 말로서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으며, 일체의 것이 불생불멸(不生不滅)한다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의 진리를 확실히 알고 있는 것. ,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한 상황을 말한다.

 

#무생법(無生法)---무생(無生)의 법, 즉 불변의 진리를 이르는 말로서 결국 공()의 이치를 뜻한다. 원효(元曉)대사는 그의 저서 <금강삼매경론>에서 무생(無生)의 법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허공에 형상과 위상이 없듯이 마음 역시 형상과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한갓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허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듯이 마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허공은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고 허공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지된다. 마음 역시 생각이 일어날 때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는 마음이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니 무생법이란 모든 법의 본래 생겨남이 없는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다.

무생법(無生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