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사전 (무유애 – 무주처열반)
#무유애(無有愛, vibhava-tanha)---팔리어로 ‘위바와 딴하(vibhava-tanha)’라 한다. 유애(有愛)란 갖고 싶어 하거나 악착 같이 생존하고 존재하려는 욕망인데 비해, 무유애(無有愛)란 유애(有愛)와는 반대의 개념으로 삶을 포기 하려는 갈애이다. ‘죽고 싶다’라든지 ‘죽으면 그만이다’라는 말과 같이 삶을 포기하려는 허무주의가 바로 무유애이다. 중생은 때로 자신감의 상실, 혹은 생명의 무상함과 허무와 허탈감, 그리고 자괴감(自愧感)에 빠져드는 때가 있다. 그러한 망상이 생겼더라도 흘러가는 바람처럼 지나쳐버리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런 망상에 집착하고 사로잡혀 극심한 고통을 느낀 나머지 자살까지 가는 일이 있다. 그래서 불교에선 자살을 무유애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유애가 개체 존속의 욕망인데 비해 무유애는 명예, 권세에 대한 욕망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 「불교개 론」, 현암사, 2007, 마스타니 후미오(이원섭 역), P145.

#무유정법(無有定法)---금강경에 나오는 경구로, ‘진리란 정해진 바가 없다’는 말이다. 즉 ‘이것이 진리다’라고 이름 짓는 그 순간에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것이 된다. 그것은 지어진 이름의 틀 속에 갇혀버리므로(올가미를 씌우는 꼴이 되므로) 진리가 아닌 것이 된다는 말이다.
#무의도인(無依道人)---인간은 대개 무엇엔가 의지하고 집작하는데, 무의도인은 자기의 본래 마음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자유 해탈을 얻은 사람을 말한다. 즉,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끄달리지 않은 사람,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당당한 참사람을 일컫는다.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이 사용한 말이다.--->무위진인(無位眞人) 참고.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부처님 당시 외도(外道)들 중에 유물론자들은 이 세상의 온갖 현상에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고 주장했다. 즉 인과응보를 부정하며 철저하게 무인무연을 주장해 인(因)과 연(緣)을 부정하는 일종의 ‘우연론’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유물론자들이 보는 사회는 ‘인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본다. 따라서 한 평생 즐기면서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어떤 도덕적 규범이나 가치도 그들에게 있어서 무용지물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쾌락주의에 빠져 밤의 문화를 즐기는, 불교적으로 말 한다면 단멸론자(斷滅論者)들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사상은 도덕과 윤리의 부재를 초래 할 수 있어서 황금만능주나 쾌락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무자경無字經---무자경이란 글자가 없는 경이니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높고 큰 뜻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법.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 모든 경전은 오로지 단 한권으로 압축이 된다. 그 한권의 경전이 바로 <심경(心經)>이다. 이 심경에는 단 한 글자도 없어서 무자경(無字經)이라고도 한다. 세상에 모든 경전이 무자심경(無字心經)에서 나왔으니 이를 깨쳐 알면 글자로 된 모든 경전을 다 뚫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무자경(無字經) 한 권이 있는데 종이와 붓과 먹으로 쓰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펼치면 한 글자도 없지만 밤낮 사시(四時)로 광명을 낸다.
#무자경無刺經---부처님께서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가시에 비유해 설하신 경. - 중아함경의 제83경, 팔리어 증지부 경전의 제10의 제72경임.
#무자성(無自性, 산스크리트어 niḥsvabhāva)---반야경에서 말하는 무자성(無自性)은 고정 불변하는 자성(自性)이 없다는 공관(空觀)과 동의어이다. 즉, 모든 현상은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에 지나지 않으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뜻임.
#무자화두(無字話頭)---화두란 참선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參究)하는데 제시되는 문제를 일컫는다. 참구란 참선하여 진리를 찾음을 뜻한다.
화두의 ‘화(話)’는 말이라는 뜻이고, ‘두(頭)’는 머리, 즉 앞서 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화두는 말보다 앞서 가는 것, 언어 이전의 내 마음을 스스로 잡는 방법을 일러 화두법(話頭法)이라고 한다. 불교 선종(禪宗)의 조사들이 만들어 낸 화두의 종류로는 1,700여 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유명한 것이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 ‘이 무엇고?(是甚麽)’,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삼서근(麻三斤)’, ‘마른 똥 막대기(乾尿橛)’ 등이다.
이 중에서 ‘구자무불성’을 무자화두(無字話頭)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 화두를 참구해 도를 깨달은 고승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한 학인(學人)이 조주(趙州)스님을 찾아가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가?”라고 물었을 때 “무(無)”라고 답해 이 화두가 생겨났다고 한다. 부처님은 일체 중생에게 틀림없이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님은 왜 없다고 했는가를 의심하는 것이 무자화두법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해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특히 많은 화두 가운데 조주의 ‘무(無)’자를 강력히 제창했다고 한다.---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참조.
#무재칠시(無財七施)---가진 것 없이 남에게 베풀 수 있는 7가지를 말한다. 재물이 아닌 것으로 하는 보시.---→무외시(無畏施) 참조.
안시(眼施)---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
언사시(言辭施)---부드럽고 친절하며 예의바른 말 한 마디, 그것은 자신의 인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를 대하는 다른 사람에게는 따뜻한 보시행이 된다. 이 언사시는 삼업(三業) 가운데 구업(口業)에 해당한다.
신시(身施)---예의 바르게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것. 이것은 몸으로 베푸는 보시행으로 삼업 가운데 신업(身業)에 해당한다.
심시(心施)---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베푸는 보시행으로 삼업 가운데 심업(心業)에 해당한다.
상좌시(床座施)---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노약자에게 또는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자리 하나를 양보하는 것도 참으로 아름다운 보시행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방사시(房舍施)---사람을 방에 재워주는 것.
#무쟁삼매(無諍三昧)---무쟁삼매란 마음이 편안해 아무 갈등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쟁(諍)은 ‘다툰다’라는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남과 다툼이 없다는 것은 마음에 갈등이 없음을 뜻하고, 나아가서는 미혹(迷惑)이 없는 것이 된다.
경전을 펼치거나 법회를 할 때 마음에 온갖 번뇌와 잡념이 가득하면 그것은 유쟁삼매(有諍三昧)이고, 번뇌가 없는 마음, 갈등이 없는 하나로 통일된 마음이 무쟁삼매이다. 그렇다면 유쟁삼매는 삼매랄 것도 없겠고, 무쟁삼매가 돼야 비로소 경전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무쟁삼매란 공(空)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주관과 객관의 대립이 소멸돼 버린 순수한 상태이다.
불기 2551년 부처님 오신 날(24일)을 맞아 당시 조계종 종정이던 법전(法傳)스님은 법어에서 “대립과 투쟁 속에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이룬 이는 화해(和解)를 빚어내어 상생(相生)의 길을 열 것이며, 탐욕 속에 들어 있는 이타(利他)의 덕성(德性)을 깨달은 이는 평화와 안락(安樂)을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라 하셨다.

#무정설법(無情說法)---무정(無情)은 유정(有情)에 반대되는 말로서 감정이 없는 초목ㆍ산하ㆍ대지 등을 말하고, 무정설법이란 인간만이 설법하는 것이 아니라 산천초목도 설법한다는 뜻이다. 부처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과거로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항상 설법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저 산꼭대기에서 있는 바위까지도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보다 몇 백배 이상의 설법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무정이란 무생물이다. 생물은 으레 움직이고 소리도 내니까 설법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무정물인 돌이나 바위, 흙덩이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무슨 설법을 하는가 하겠지만, 불교를 바로 알려면 바위가 설법하는 것을 들어야한다. 그뿐 아니라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허공까지도 설법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온 세상에 설법 안 하는 존재가 없고 불사(佛事) 안 하는 존재가 하나도 없다. 참으로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눈만 뜨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도 열린다. 그러면 그기에서 있는 바위가 설법을 하는 것을 다 들을 수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이라고 한다. -성철스님의 이머꼬 중에서-
#무주(無住)---무주는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공성(空性)은 일정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것과 함께 하는 것이 된다.--->무념, 무상, 무주 참조.
#무주처무주심(無住處無住心)---머무는 곳이 없는 마음.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야 바로 머무는 것입니까?” “머무는 곳이 없는 데 머무는 것이 바로 머무는 것이니라.”
“머무는 곳이 있을 것 같으면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 망상이 다 끊어진 여기에는 부처도 설 수 없고, 조사도 설 수 없고, 마구니도 설 수 없고, 외도도 설 수 없고, 일체가 모두 머물지 못 합니다.”
“일체 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곧 머무는 곳이니라. 이와 같이 얻은 것을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라 하는 것이니 무주심이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행위에 집착하지 않고 - 내가 보시를 한다는 데에 마음이 머물지 않고, 공덕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을 무주상보시라 하는데, 무주상의 보시가 곧 보시바라밀이다.
#무주처열반(無主處涅槃)---열반에 대해서는 2열반ㆍ3열반ㆍ4종 열반 등의 분류가 있다. 그 중 4종 열반은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ㆍ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ㆍ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ㆍ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의 넷이다.
이 중 무주처열반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룸으로써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번뇌를 모두 여의고 생사의 세계를 벗어났으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열반의 경지에 머무르지 않고 생사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생사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항상 큰 자비와 지혜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열반으로 생사와 열반의 차별이 없는 것을 아는 깊은 지혜를 얻어 도달할 수 있는 열반이다.--->소지장(所知障),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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