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사전 (무진의보살 – 문자선)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한량없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서원을 세운 보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관음경(觀音經)]은 무진의보살과 부처가 관세음보살에 대해 문답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차법회(無遮法會, Panca parisad)---무차대회(無遮大會)라고도 한다. 부처의 보시정신에 입각해 승려ㆍ속인ㆍ남녀노소ㆍ귀천 등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법문을 듣고 잔치를 열어 재물을 베푸는 법회의식을 이른 말이다. 즉 부처의 덕과 자비를 골고루 나누어준다는 의미로 개최하는 법회이다.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 때 국왕이 유명한 선지식을 모시고 차별 없이 재물과 불법을 보시한데서 비롯됐다. 중국에서도 당나라 때 현장(玄奬)이 승려들 사이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무차법회를 연적이 있고, 국내에서는 신라ㆍ고려 때 백성의 어려움을 달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차원에서 무차법회를 열고 조정에서 재물을 보시했다.

#무착(無着)---대승불교의 유식론을 체계화한 불교 사상가이다. 본명은 아상가(阿僧伽/Asanga, 300?~390?)이며, 세친(世親)의 형이고, 현재의 파키스탄에 있는 페샤와르(Peshawar) 출신이다. 처음에는 소승불교에서 출발했지만, 뒤에 유식파(唯識派)의 시조 마이트레야(Maitreya/미륵)의 가르침을 받게 돼, 대승불교의 모든 경론을 연구하고 유식불교(唯識佛敎)를 확립했으며, 유가행파(瑜伽行派)의 대표적 논사였다. 유식설을 조직ㆍ체계화한 <섭대승론(攝大乘論)>을 지었고, 그 외에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등을 저술했다.--->유식학파(唯識學派) 참조.
#무표색(無表色)과 표색(表色)---무표색(無表色)과 표색(表色)은 서로 상대어이다. 표색이란 신체에 의한 행동과 언어에 의한 행위, 즉 신업(身業)과 구업(口業) 두 가지를 말하며, 따라서 표색은 표업(表業)이라고도 한다. 무표색이란 표색이 선 혹은 악으로 외부에 드러날 때 일종의 잠재적인 힘을 내부에 남기게 되는데 이것을 무표색이라 한다. 사람이 한 번 강한 선 혹은 악의 표색에 의해 무표색을 일으키게 되면 그 무표색은 지속성이 있어서 선의 무표색은 악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해하며, 악의 무표색은 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해 한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 습관과 같은 것을 무표색이라고 한다.
표색과 무표색은 다 같이 객관적으로 원래 독립 자존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행위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의 행위가 없다면 표색(表色)의 표(表)는 의의가 없고, 또 표색이 없으면 따라서 무표색도 없다.
예를 들면, 우리가 도둑질을 안 하는 것은 물론 도둑질이 옳지 않은 일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도둑질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선(善)의 무표색(無表色)이 방비하고 있어서 도둑질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도둑질을 해보면 그 다음 무표색이 발동을 해서 도둑질하기가 처음보다 훨씬 쉽고,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남의 물건을 쉽게 훔치게 되는 것과 같다. 남을 험담 하는 것도 또한 그렇다. 험담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처음 하는 것은 힘들지만 한 번 하고 나면, 무표색이 발동을 해서 자주 또 쉽게 버릇처럼 남을 험담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처음에는 이웃들에게 보시(布施)하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럽게 생각되지만, 보시를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 다음에는 무표색이 발동을 해서 그러한 어색함이 조금씩 덜해져서 점점 보시를 하는 것이 수월해지고 나아가 보시가 내 삶의 일부가 됨으로써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학(無學)---아라한과에 이르면 무학위(無學位)라 해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했음을 말한다.--->사향사과(四向四果) 참조.
#무학도(無學道)---삼도(三道)의 하나. 삼도란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를 말한다. 그 중 무학도는 수행을 끝내고 다시 더 배울 것이 없는 최고의 단계를 이른다. 즉, 수도의 결과 해탈ㆍ열반에 이른 것을 뜻한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이 실현된 상태이다. 경전에서는 ‘고(苦)의 두루 앎을 마치고, 집(集)의 끊어버림을 마치고, 멸(滅)의 실증함을 마치고, 도(道)의 닦음을 마친다’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사성제의 수행을 통달했음을 말한다.--->견도(見道), 삼도(三道) 참조.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년~1405년)---고려 말, 조선 초기의 고승. 속성은 박씨(朴氏), 무학(無學)은 호, 법호는 자초(自超)이다. 경남 합천 출신으로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제자이며, 공민왕 2년(1353)에 원(元)나라 연경(燕京)에 유학했다가 귀국한 후 주로 양주 회암사(檜巖寺)에 주석했으며 조선 태조의 왕사였다.
무학대사의 부도는 양주 회암사 터 위쪽 산등성이에 있다. 태종 7년(1407) 입적한 그 해에 건립했으며, 조선시대 부도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다(보물 제388호).
#묵빈대처(默賓對處)---침묵으로써 물리쳐 대처하라는 것이다. 그럼 스스로 사라질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어떤 갈등이 있을 때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 세월이 가면 다 풀린다.
#묵식심통(黙識心通)---묵식(默識)이란 말없이 마음속으로 알게 됨을 말하고, 묵식심통은 남이 말한 것을 암묵(暗黙) 중에 깨달아 서로의 마음이 통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묵조선(默照禪)---간화선이 화두를 참구해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법인데 비해 묵조선은 화두나 공안을 활용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않아서 좌선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법을 일컫는다. 중국 송대에 조동종(曹洞宗)의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스님에 의해 형성되고 체계화된 수행체계이다.
오로지 침묵만을 지언(至言)으로 삼는 것으로서 묵묵히 안으로 관찰해 그 마음을 청정케 하고 그 법(法)의 근원을 철견(徹見)하는 것, 즉 인간의 마음이란 묵조(默照)하면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지 화두를 가지고 의심하고 참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굉지선사가 “오직 앉아서 묵묵히 말을 잊고 쉬어가고 쉬어가게 한다”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 대혜선사(大慧禪師)께서 그의 가르침을 비난해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지칭한데서 묵조선이란 말이 비롯됐다.--->지관타좌(只管打坐) 참조.
#묵호자(墨胡子)---5세기 경 신라에 불교를 처음으로 전했다는 고승이다. 국적은 불명이고 고구려로부터 왔다고 한다. 신라 눌지 마립간(재위 417~458) 때 고구려에서 일선군(一善郡 ; 지금의 선산군) 모례(毛禮)의 집에 잠입해 굴속에서 불교를 포교하다가 왕녀의 병을 고쳐 불교의 이적을 보여주고 사라졌다고 하나 아도(阿道)와의 동일인지 여부가 불명하다.
#문사수(聞思修)---부처님 법을 구하고자 할 때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 즉 많이 들어라(聞). 생각을 하라(思). 실천을 하라(修)의 세 가지이다.
#문수보살(文殊菩薩)---문수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만주슈리(Majushri)이고,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만수실리보살(曼殊室利菩薩), 문수시리(文殊尸利), 묘길상(妙吉祥)이라고도 표기되는 보살이다. 문수(文殊)와 만수(曼殊)는 묘(妙)의 뜻이고, 사리(師利)와 시리(尸利)는 덕(德), 길상(吉祥)의 뜻이다. 이 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돕기 위해 일시적인 권현(權現=化身=權化)으로 보살의 자리에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의 왼쪽에 협시해 석가불의 지혜를 상징하는데 머리에 5지(智)를 상징하는 오발관(五髮冠 - 오계/五髻)을 쓰고 있으며, 바른손에 지혜의 칼을 들고, 왼손에는 지혜의 그림이 있는 청련화(靑蓮華)를 쥐고 위엄과 용맹을 나타낸 사자를 타고 있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 입멸 후 인도에서 실재했던 인물이라고 하며, <문수사리반열반경(文殊師利般涅般經)>에는 사위국(舍衛國) 다라취락범덕 바라문(多羅聚落梵德 婆羅門)의 아들이라 돼 있고, 그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른 경전에 따르면 단순히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등장하기도 해 그 역사적 실재성은 분명하지 않다.
※권화(權化)---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나타나는 것. 권현(權現), 화신(化身)도 같은 말임.
※오계(五髻)---머리카락을 전ㆍ후ㆍ좌ㆍ우 그리고 중간에 볼록 솟아나게 묶은 형상.

#문자반야(文字般若)---부처님의 가르치심은 모두 문자화돼 있다. 이와 같이 문자화돼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 즉 경(經)ㆍ율(律)ㆍ논(論) 전부를 가리킨다.
그런데 경전의 문자나 개념에 너무 치중하면 불경(佛經)의 원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의 마음을 글을 통해서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문자를 통해서 현상의 있는 그 대로의 모습을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을 문자반야라고도 한다.--->관조반야(觀照般若)와 실상반야(實相般若) 참조.
#문자선(文字禪)---언어, 문자 풀이나 해석으로 선을 이해하는 것. 즉 이치나 논리, 알음알이로 이해하는 선을 말한다. 의리선(義理禪)과 비슷한 말.
중국 송나라 시대에 문자선의 폐해가 심했다. 당나라 말엽부터 송대에 걸쳐 고승들의 각종 어록(語錄)이 대량으로 출현하자, 점차 선의 수행이 일종의 주석학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경향은 대혜(大慧)선사의 스승인 원오극근(圓悟克勤)의 어록인 <벽암록(碧岩錄)>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그리하여 선 수행이 문자선의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심지어 사대부 문인들의 언어적 유희로 전락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대혜선사가 바로 스승인 원오선사의 벽암록을 모두 불살라 유포를 금지시켰을까. 이는 바로 문자선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이었고, 그러한 폐해를 고치고자 묵조선과 간화선이 등장했다.--->구두선(口頭禪) 참조.

'불교용어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불교용어사전 (바라문 – 반야) (0) | 2025.09.22 |
|---|---|
| 불교용어사전 (미가다야 – 밀행) (0) | 2025.09.21 |
| 불교용어사전 (무유애 – 무주처열반) (2) | 2025.09.19 |
| 불교용어사전 (무생법인 – 무위진인) (1) | 2025.09.18 |
| 불교용어사전 (무루 – 무생법) (1) | 2025.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