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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교용어사전 (바라문 – 반야)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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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바라문 반야)

 

#바라문(婆羅門, Brahman)---브라만이라고도 하는데, 인도 특유의 신분으로 카스트의 가장 높은 계층. 주로 브라만교(Brahmanism, 婆羅門敎/바라문교)의 베다(Veda) 성전을 신봉하던 사제자(司祭者) 계층을 일컫는다. 사상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주술적(呪術的) 제사를 주관하고, 종교적 지도자로 세습에 의해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혈통을 중시했다. 이와 같은 바라문에 대해 새로운 정신적 사상가로 등장한 것이 사문(沙門)이고, 붓다도 정각을 이루기 전엔 사문의 한 사람이었다.

 

#바라밀(波羅蜜)---바라밀다(波羅蜜多)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의 음사로서 피안(彼岸)에 이른 상태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하며, 열반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로 건너가는 보살의 수레라 할 수 있다. 한역에서는 보통 도피안(到彼岸) 또는 도()라고 번역되고 있다. 용수(龍樹)의 저서 <대지도론(大智度論)>의 도()는 바로 파라미타(Paramita)의 번역어이다.

대표적인 바라밀로는 <반야경>에서 설법하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6바라밀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의 반야바라밀은 다른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또한 6바라밀에 방편(方便), (), (), ()의 네 가지 바라밀을 더해 10바라밀(十波羅密)이라고 한다. 바라밀의 경지는 애쓰고 노력하는 경지가 아니라 몸에 배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경지이다. 애쓰는 것이 없는 제법이 공한 상태, 즉 공성(空性)이 있어야 바라밀이 된다. 그리하여 바라밀은 보살의 길로서 보살이 걸어가야할 도()를 의미한다.--->도피안(到彼岸), 6바라밀(六波羅蜜) 참조.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ratimoksya)---불교에서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의 모든 조항을 모아 놓은 계본(戒本)을 말한다. 산스크리트 프라티모크샤(Pratimoksya)를 음역한 말이다. 붓다가 성도한 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귀 의해서 교단을 이룸에 따라 이들을 이끌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그 중 10중대계(十重大戒)살생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거짓을 말하지 말라, 술을 팔지 말라,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남을 비방하지 말라, 제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성내지 말고 참회를 받아 주어라,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고 했다.

 

#바수밀다(婆須蜜多)---바수미트라(산스크리트어 vasumitra)와 같은 말.--->세우(世友) 참조.

 

#바수밀다(婆須蜜多)여인---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여인. 선지식을 찾는 선재동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여인임.

 

#바수밀다(婆須蜜多)창녀---인도에 바수밀다라는 창녀가 있었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창녀 바수밀다는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붓다님, 저는 바수밀다라 하옵니다. 더러운 육신을 가진 년이지만, 붓다님께 꽃 한 송이를 드리고 싶어 왔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조아리며 시든 꽃 한 송이를 붓다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붓다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시든 꽃을 받았다. “고맙구나. 네가 준 꽃은 향기롭기 그지없다. 너와 내가 여기서 만난 것은 인연. 네가 매일 밤,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수천겁의 삶이 쌓아놓은 네 업보 때문이다. 이제는 너는 바수밀다도, 외간 남자와 몸을 섞어야 하는 여자도 아니다. 이제 너를 산시야(향기로운 꽃)’라 부르겠다. 허리에 단 패물을 끄르고 나를 따라오라.”

바수밀다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붓다는 친히 손을 내밀어 바수밀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다. 바수밀다는 산시야가 됐고, 창녀에서 꽃이 됐다. 붓다는 조용히 마을을 떠나갔다. 스무 명 남짓 되는 제자들의 행렬 맨 뒤에는 아직 화장을 지우지 못한 산시야가 걷고 있었다.

 

#반가부좌(半跏趺坐)---오른쪽 다리를 구부려 왼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 혹은 왼쪽 다리를 구부려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얹고 앉는 자세를 말하는데, 대개 왼쪽 발은 그대로 두고 오른쪽 발만을 구부려 왼쪽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는 자세를 말하며, 바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모습이다.

전가부좌(全跏趺坐)를 여래좌(如來坐)라고 하는 데 반해 보살좌(菩薩坐)라고도 한다. 또 왼쪽 다리로 오른쪽 다리를 누르고 앉는 것을 길상좌(吉祥坐), 오른쪽 다리로 왼쪽 다리를 누르고 앉는 것을 항마좌(降魔坐)라고 한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왼쪽 발을 그대로 두고 오른쪽 발만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는 반가부좌(半跏趺坐) 자세에 왼손으로는 오른쪽 다리의 발목을 잡고, 오른쪽 팔꿈치는 무릎 위에 붙인 채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 이 상은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해,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 유상(太子思惟像)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3세기경 마투라(mathurā) 조각과 간다라(Gandhāra)미술에 서 나타난다.

중국의 경우는 일찍이 5세기 후반 윈강(雲岡) 석굴에 나타나지만 6세기 후반 북제(北齊)시대에 성행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로 추정하고 있다. 석가모니 이후에 나타날 미륵불이 태자사유상형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도상이다.

6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통일신라 초기까지 많은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비롯해 봉화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을 들 수 있다.

이 반가사유상은 일본에도 전해져 고우류사[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의 반가사유상 과거의 같은 형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많은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진 점, 그리고 당시 삼국과 일본 간의 교류 관계를 살펴볼 때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배(半拜)---부처님께 예경을 올리는 절은 오체투지가 원칙이지만, 다음과 같이 큰 절을 할 수 없는 경우에 반배를 한다. 또는 반배를 다른 말로 저두(低頭)라고 한다.

- 반배를 하는 경우

절의 입구인 일주문, 부도탑,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해탈문을 지날 때, 절 마당에서 대웅전을 향해, 탑 앞에서, 경내에서 스님이나 도반을 만날 때, 대웅전 등 전각에서 향과 초 등 공양물을 올린 후, 법당 들어가고 나올 때. 야외 법회 시, 옥내외 법회시 대중이 너무 운집해 오체투지를 할 수 없을 때 등.

 

#반야(般若)---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쥬나(prajna)이며, 팔리어 ‘panna’의 음역어이다.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말한다. 보통 말하는 판단능력인 분별지(分別智, vijnana)와 구별하기 위해 반야라는 음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초월적 지혜, 즉 인간 생명의 근원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예지(叡智)이므로 이기적인 분별심을 초월한 예지라 할 수 있다. 달리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하며, 이 반야의 사상은 대승불교에서 확립된 것이다.

반야의 반()은 접두어 ‘pan’를 음사한 것인데, 그 의미는 능동적으로 앞서간다는 것이고, ()‘na’를 음사한 말로 혜() 즉 앎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알기는 알되 진행적으로, 능동적으로 머물지 않고, 개념분별망상판단 인식의 작용이 일어나기 이전에 미리 알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진행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