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사전(반야경 – 반주삼매경)
#반야경(般若經)---원명은 <반야바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으로 반야(지혜)를 주제로 한 경전들을 총칭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대반야경(大般若經)>과 같은 말이라 해야 되겠는데, 당나라 현장(玄獎)이 번역한 600권의 < 대반야경>에도 누락된 반야계통의 경전이 있다. 즉, 오늘날 가장 널리 독송되고 있는 <반야심경>과 호국 경전의 하나인 <인왕반야경(人王般若經)>은 그 속에 포함돼 있지 않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반야경>도 반야경 계통 경전의 하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야경전에 속하는 경전만도 수십 종류에 이르며 현존하는 대승경전의 3분의 1에 해당 하는 분량만큼이나 그 경명(經名)도 아주 다양하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열 가지를 ‘십본반야(十本般若)’라고 하 는데,
①<소품반야경> ②<대품반야경> ③<인왕반야경> ④<금강반야경> ⑤<반야심경> ⑥<유수반야경> ⑦<문수반야경> ⑧<승천왕반야경> ⑨<이취반야경> ⑩<대반야경>. 이 가운데서 ③번과 ⑤번 이외에는 모두 ⑩번의 600권<대반야경>에 포함돼 있다.--->수품반야경과 대반야경 참조.
#반야바라밀(Prajna-paramita, 般若波羅蜜)---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이라고도 한다. 반야(般若)란 팔리어 ‘panna’를 음사한 말로서, ‘수승한 지혜’라는 뜻인데, 이때의 지혜는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를 일컫는다. 그 지혜란 “공에 대한 지혜이고, 집착 혹은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여읜 지혜이며, 존재의 본질을 직관하는 지혜이다.” 즉, 모든 분별지(分別知)를 떠난 궁극적인 지혜라는 말이다.
그리고 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를 음사한 말로서, 태어나고 죽는 현실의 괴로움에서 번뇌와 고통이 없는 경지인 피안(彼岸)으로 건너간다는 뜻이고,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한 지혜를 터득하기 위한 수행을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즉 보살이 수행을 통해 제법(諸法)이 공(空)임을 아는 참다운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는 일이다.--->바라밀(波羅蜜), 육바라밀(六波羅蜜) 참조.

#반야심경(般若心經)---대승불교 반야사상(般若思想)의 핵심을 담은 경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경이다. 원명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고, ‘마하’는 크다는 뜻이며, ‘반야’는 지혜를 뜻하고, ‘바라밀다’는 완성을, ‘심’은 심장 또는 정수를 뜻하는 말이므로, ‘위대한 지혜의 완성과 그 정수를 담은 경’이 된다. 즉, 이 경전이 크고 넓은 반야계(般若系) 여러 경전의 정수를 뽑아내어 응축한 것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 경은 수백 년에 걸쳐서 편찬된 반야경전의 중심 사상을 260자로 함축시켜 서술한 것으로 불교의 모든 경전 중 가장 짧은 것에 속하며, 한국불교의 모든 의식(儀式) 때 반드시 독송되고 있다.
중심 사상은 공(空)이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뜻에서 시작해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므로 현상으로는 있어도 실체나 자성(自性)으로는 파악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한역본으로는 현장(玄奘)의 것이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 현장법사와 <반야심경> 사이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즉, 현장법사는 629년 천축국(天竺國)을 향해 구법의 길에 올랐다. 그리하여 익주(益州) 공혜사(空惠寺)에 이르렀을 때, 한 병든 노스님을 만났는데, 그는 험난한 천축 길에 만나게 어려움을 알려주면서 “삼세제불의 심요법문(心要法門)이 여기 있으니 이것을 늘 기억해 외면 온갖 악귀를 물리치고 안전히 다녀올 수 있으리라”고 했다. 그 노스님이 가르쳐준 법문이 바로 범어로 된 <반야심경>이었다.
천축을 가는 길은 험난한 고난의 길이었으나 그때마다 이 <반야심경>을 독송함으로써 그때마다 길이 저절로 열리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했다.
그리하여 현장이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천축의 나란타사(Nālandā, 那爛陀寺)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그는 거기에서 자신에게 <반야심경>을 가르쳐준 그 병든 노스님을 만났다. 현장을 본 그 노스님은 흔연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이곳에 무사히 도착한 것은 삼세제불의 심요법문을 수지 독송한 덕이니라. 내가 바로 관음보살이다.” 그러고는 표연히 떠올라 하늘 높이 사라져버렸다.
그 뒤 현장법사는 귀국하자마자 관음보살이 친히 교수한 <반야심경>을 번역해 유포했는데, 수지해 지심으로 독송하는 이마다 그 영험함을 경험했다고 한다.
#반야용선(般若龍船)---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망자는 아미타불이 기다리는 피안의 극락정토로 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망자가 극락정토로 갈 때 타고 가는 배가 반야용선이다. 이때에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반야용선을 인도한다.

#반야지(般若智)---반야지는 일명 근본지(根本智)라고도 하며, 반야지사상은 공(空)사상, 그리고 중도(中道)사상과 더불어 중관(中觀)사상을 구성하는 3대 사변(思辨)이다.
모든 사물의 실상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지혜, 곧 ‘공(空)’임을 보는 지혜이다. 계율로 닦아 깨끗해진 사람이 선정에 의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지혜가 반야지로서, 다른 지혜와 구별된다. 이 반야지는 곧 해탈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반야지를 ‘각(覺)’이나 ‘오(悟)’라고도 한다. 그래서 반야지는 깨달음의 수단이 아니고, “깨달음” 그 자체이다.
반야지는 예술을 느끼는 감성이나 자비심과 같은 감성작용과 같은 것으로, 마음이 순수할 때 자비심이 발현될 수 있듯이, 순수한 마음의 상태에서 반야지의 발현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반야지는 만들어지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고, 인간의 마음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유(本有)의 순수감성에 가깝다.
반야지는 초분별지(超分別智)와 같은 탁월한 분별지의 성격이 아니고, 감성이라고 보아야 하는 까닭은, 인간의 감성이 분별력보다는 마음의 근원에 더 가까운 까닭이며, 자비심과 같은 것도 분별력이 아닌 인간의 감성작용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분별력이 비교, 분석, 추리, 판단과 같은 분별작용에 의한 사물의 존재양태에 대한 이해라고 한다면, 감성은 분별에 존재하지 않은 사물에 대한 직관이라고 할 수 있다.
#반연(攀緣)---반연이란 말은 일반 사회에선 잘 쓰지 않으나 불경엔 자주 나오는 말이다. 반(攀)이란 의지한다는 뜻이고, 연(緣)이란 조건이란 의미이니, 곧 얽힌 인연이라는 말이다. 그 외에 아래와 같은 여러 뜻이 있다.
얽힌 인연이란 말.
휘어잡고 의지해서 기어 올라감.
정상적인 인연이 아니라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인연.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경계를 대했을 때 작용하고 그 모습을 취하는 것.
도 닦는 것을 방해하는 얽히고설킨 복잡하고 쓸데없는 일들.
집착의 대상이 되는 인연 경계. 그래서 반연은 일체 번뇌 망상의 시초이며 근본이다.
※달마(達摩)스님이 이조(二祖) 혜가(慧可)에게 처음으로 가르치기를, “밖으로 모든 반연을 끊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道)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했다.---여기서는 얽힌 인연이라는 말이다.
※반연식물(攀緣植物)---다른 물건을 감아 뻗어 올라가는 줄기식물. 칡, 호박, 나팔꽃, 수세미, 오이 따위.
#반열반(槃涅槃)---열반은 산스끄리트어 니르바나(nirvaana)의 음역이다. 그런데 반열반은 파리니르바나(parinibbaana)라 한다. ‘파리(pari)’는 완전이란 뜻이다. 따라서 반열반은 완전한 열반이란 뜻이 되며, 주로 석가모니의 죽음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구경열반(究竟涅槃) 혹은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고도 한다.
ㆍ유여열반(有餘涅槃)--현신으로 깨달음을 얻은 상태.
ㆍ현신해탈(現身解脫)--살아 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
ㆍ무여열반(無餘涅槃)--죽음에 의해 이룬 완전한 열반.
ㆍ이신해탈(離身解脫)--죽음에 의해 이룬 해탈.
#반자밀제(般刺密帝)---중인도의 승려. 반랄밀제(般剌蜜帝)라고도 한다. <수능엄경(首楞嚴經)>이 인도의 유명한 절 나란타사에 숨겨져 있어서 당 시대 이전까지는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다가 당나라 4대 중종 때인 705년경 반자밀제(般刺密帝)에 의해 전래돼 그에 의해 한역됐다.--->능엄경(楞嚴經) 참조.
#반주삼매(般舟三昧)---반주(般舟)는 산스크리트어 pratyutpanna의 소리 번역인데, 현재(現在) 혹은 현세(現世)란 뜻이다. 그리고 7일 또는 90일을 기한으로 해서, 계율을 지키고 도량이나 불상의 주위를 돌면서 오로지 아미타불을 생각함으로써, 여러 부처가 눈앞에 나타나는 삼매를 말한다. 즉 염불삼매로서 염불을 통해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부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즉 ‘불현전(佛現前)’, 부처가 바로 앞에 나타나 계심을 뜻한다.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반주삼매경>은 후한(後漢) 시대인 AD 197년에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정토사상의 선구적 불경이다. ‘반주(般舟)’란 산스크리트어 pratyutpanna의 음사인데 그것은 불립(佛立)이라, ‘부처불(佛)’자, ‘설립(立)’자로서 내 마음 속에 부처님을 세운다는 뜻이다. 부처가 서서 앞에 보인단 말이다. 즉 ‘불현전(佛現前)’, 부처가 바로 앞에 나타나 계심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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