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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교용어사전 (불타선다 – 브라만(婆羅門))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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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타선다 브라만(婆羅門))

 

 

#불타선다(佛陀扇多, Buddhasanta)---각정(覺定)이라 번역. 북인도 출신의 승려로, 북위(北魏)에 와서 508년에 <십지경론(十地經論)>의 한역에 참여했고, 낙양(洛陽) 백마사(白馬寺)와 상주(相州) 금화사(金華寺)에 머물면서 <섭대승론(攝大乘論)>, <여래사자후경(如來師子吼經)>, <금강삼매다라니경(金剛三昧陀羅尼經)> 등을 한역했다.

 

#불타야중(佛陀耶衆)---불타야중은 모든 부처님에게라는 뜻이다. ‘불타는 부처님이란 말이며, ‘()’에게라는 조사이며, ‘()’무리라는 복수의 뜻이다.

#불탑(佛塔)---탑파(塔婆)라고도 하는데, 탑이란 산스크리트어 Stupa, 팔리어 Thupa의 소리번역이다. 탑파란 당초에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로서 비롯됐다. 스리랑카에서는 탑을 다가바 또는 다고바라 부르고, 미얀마에서는 탑을 파고다(pagoda)’라 일컬으며,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도 역시 파고다라고 한다.--->탑파(塔婆) 참조.

 

#불해(不害)---붓다가 말한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비와 불해이다. 불해는 보통 불살생(不殺生)으로 번역하지만 넓게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불환과(不還果)---아나함(阿那含) 참조.

 

#붓다(Buddha:佛陀)---깨달은 사람을 일컫는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au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ārtha:悉達多)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라 불리게 됐다. 또한 사찰이나 신도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Tathāgata)라고도 불리고,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Bhagavat) 석존(釋尊) 등 으로도 불린다.--->석가모니(Sākyamuni) 참조.

 

#붓다고사(Buddhagosa, 불음/佛音)---붓다고사는 서기 440년 경 중부 인도 부다가야 지방 브라만 가문 출신의 상좌부 계통의 불교학자로서 불음(佛音), 각음(覺音)이라고도 한다. 스리랑카의 마하나마왕(Mahanama AD458- AD480) 당시 스리랑카에 와서 불교의 교리를 요약한 논서인 <청정도론(Visuddhi magga 비숫디 막가)>이라는 유명한 주석서를 발간했다. 그리고 실론 대사(大寺)에 거주하면서 그 절에 소장돼 있는 성전을 팔리어로 번역하고, 팔리어 삼장에 대한 주해를 완성했다.--->청정도론(淸淨道論) 참조.

 

#붓다다사(Ajahn Buddhadasa, 1906~1993)---아찬 붓다다사 스님은 태국의 고승이다. 20세 때 출가했고, 26세 때인 1932년 자신의 고향에 수행도량 <왓 수안 목(Wat Suan Mokkh)=‘해탈의 정원’>을 창설했다. ‘수안 목도량은 불상이나 건물도 없지만 전 세계의 불자들이 수행을 위해 모여들었다. 이곳은 오직 수행만을 위해 숙식과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여건을 갖춰놓고 인종, 국적, 성별에 관계없이 수행을 원하는 이는 누구나 찾아올 수 있도록 해놓은 곳이다.

스님은 이곳을 중심으로 새 불교 운동’, 즉 초기불교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면서 수행을 하자는 내용을 주창해 실천함으로써 불교사의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찬 붓다다사 스님은 교학을 연구하는 승려와 수행에 전념하는 승려의 구별을 두었던 남방 상좌부 불교 전통을 통합했다.

 

#붓다의 특징---불교에서 말하는 붓다는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신과는 그 개념이 전혀 다르다. 다음은 현암사 간, 마스타니 후미오 지음 <불교개론>에서 발췌 정리한 내용이다.

붓다는 천지창조의 절대자가 아니다. 평범한 자연인의 한 사람일 뿐이다.

붓다는 최고의 유일한 존재도 아니다. 그는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붓다는 신적(神的) 속성을 지녔다든지 구제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그런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 절대 타자(絶對他者)’도 아니다. 다소 뛰어난 자연인의 한 사람일 따름이다. 붓다 자신도 상대주의를 지향했다. 연기론(緣起論)이 상대주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붓다는 결코 윤회(輪廻)를 말하지 않았다. 윤회는 당시 인도에 보편화된 상식이었고, 후세 불교인들이 그것을 받아 들였을 뿐이다. 그리고 열반(涅槃)도 타생(他生)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탈(解脫)을 의미했고, 해탈은 해방과 자유의 개념을 나타낸 말이었다.

붓다는 리얼리스트(realist)였다. 붓다는 그의 가르침을 현실적으로 증명되는 것,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 붓다의 가르침은 천상의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상의 문제, 내세의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붓다는 결코 신비주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붓다는 휴머니스트(humanist)였다. 불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인간에 초점을 둔 신() 없는 종교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신격화를 거부했다. , 그에게 예배하고자 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를 보려고 하지 말고 법을 보라고 했다. 붓다는 사람이지 신의 아들이 아니며, 신과 인간의 중재자이거나 속죄자도 아니다. 더구나 신판자도 신도 더욱 아니다. 붓다는 어디까지나 선각자이고, 지도자일 뿐이다.

절대타자(絶對他者)---인간이나 이 세계와는 절대적으로 다르며 독립된 초월적 존재자. 종교에 있어서, 신비적인 실재(實在)가 인간성을 초월해 인간과는 전혀 질적으로 다름을 표현하는 말.

헌데 후세 불교에서는 붓다를 신격화해서 마치 절대자인 것처럼 추켜세우는 종파나 불교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붓다의 성격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만(Brahman, 婆羅門)---카스트의 가장 높은 계층으로 주로 브라만교 성직자 계층을 일컫는 용어이다.--->바라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