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설화

불교설화 - 시주하고 왕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10. 23.

불교설화 - 시주하고 왕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자연스럽게 수정)

 

주제 : 효선

국가 : 한국

시대 : 백제

지역 : 충청도

참고문헌 : 한국사찰사료집

첨부파일 mp3 :

741 불교설화 - 시주하고 왕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mp3
6.66MB

 

 

 

https://blog.naver.com/kbs650604/224047823818

 

불교설화 - 시주하고 왕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불교설화 #시주하고왕비가되어아버지의눈을뜨게한효녀 (자연스럽게 수정) • 주제 : 효선 • 국가 : 한국 ...

blog.naver.com

 

 

1. 설화내용

 

불교설화 - 시주하고 왕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옛날 충청도 대흥현에는 시력을 잃은 원 봉사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어린 딸 홍장만을 의지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죠. 홍장은 뛰어난 외모 못지않게 마음씨도 곱고 지혜로운 아이였습니다. 눈먼 아버지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아버지의 마음에 맞춰 옷이며 음식이며 모든 것을 챙겼습니다. 이런 홍장의 효심은 동네를 넘어 멀리 중국에까지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원 봉사는 읍내에 나갔다가 홍법사의 화주승 성공 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원 봉사를 보자마자 절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어젯밤 꿈에 금인(金人)께서 현몽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일 아침 길을 나서면 반드시 맹인을 만나게 될 터이니, 그가 큰 시주를 할 것이라 이르셨지요. 당신과 금강불후(金剛不朽)의 인연을 맺고자 하니, 저에게 큰 시주를 해주십시오.”

밖에까지 들릴 만큼 뜻밖의 부탁에 원 봉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저는 집이 너무 가난해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스님이 다시 한 번 간청하자, 원 봉사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집에 곡식 한 톨 없고, 들에는 밭 한 뙈기도 없는 신세라 무엇을 시주하겠습니까. 다만 어린 딸 하나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아이를 내어 사찰의 법당을 짓는 데 보태십시오.”

그때 홍장은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성공 스님은 원 봉사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와 함께 초라한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 약속을 전해 들은 홍장은 아버지와 부둥켜안고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들의 슬픔은 산천의 색까지 바꿀 만큼 컸지요. 결국 홍장이 스님을 따라나서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며 길가에 서서 눈물로 배웅합니다.

 

홍장과 스님이 산을 넘고 들을 건너 고향을 떠나오길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피로가 몰려온 어느 날, 둘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소량포 언덕에서 잠시 쉬기로 했죠. 홍장과 스님이 서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붉은 배 두 척이 화살처럼 다가오는 게 보였습니다. 그 배들은 중국에서 온 배로, 화려한 옷차림의 사자(使者)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덕에 앉아 있던 홍장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배에서 내려와 정중하게 절을 올렸습니다.

황후마마이시옵니다!”

 

홍장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자들이 공손히 설명했습니다. “저희는 진나라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영강 연간 해년 오월 신유일에 황후께서 돌아가신 후, 황제 폐하께서는 매일 슬픔에 잠기셔서 좀처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신인이 나타나 새 황후께서 동국에 태어나 이미 장성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꿈에서 깬 폐하께서는 곧장 비단과 금은보화를 배 두 척 가득 실으시고, 저희를 사자로 삼아 동국에 가서 황후를 모셔 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저희는 폐하의 엄명을 받들어 밤낮없이 달려왔고, 다행히 여기서 황후마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자들의 설명을 들은 홍장은 긴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하나 가는 것이야 두렵진 않으나, 가져온 폐백은 얼마나 됩니까?”

두 척의 배에 가득 담긴 보물입니다.”

그러자 홍장이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제 몸은 이미 아버님을 위해 선근(善根)을 짓고자 드리는 몸입니다. 그러니 두 배의 보물 모두를 이 화주 스님께 드린다면 저도 기꺼이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배에 실린 모든 보물은 홍법사로 옮겨졌고, 사신들은 홍장을 모시고 진나라로 돌아갔습니다. 홍장이 진나라에 도착해 대궐에서 황제를 뵙자, 둥근 달 같은 얼굴과 별빛같이 반짝이는 두 눈에서 환한 빛이 퍼져 나왔습니다. 황제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바다 끝 조그만 나라에서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이가 나올 수 있단 말이냐!”

그날 이후로 홍장은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곤 했습니다.

 

황후가 된 홍장은 성품이 단아하고 자애로웠으며, 하늘을 닮은 넓은 위엄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늘 온 마음 다해 정업(淨業)을 실천하려 애썼습니다. 석공들을 불러 마노탑(瑪瑙塔) 삼천 기를 세우게 해 여러 나라에 나눠 모시게 했고,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비록 이 보위에 올랐으나, 어찌 고국(조선)을 잊을 수 있겠소.”

이와 함께 53불과 500 성중, 16 나한의 불상을 조성해 돌배 세 척에 실어 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 배들은 감로사에 도착해 불상은 봉안되었고, 풍덕현 경천사에도 옮겨져 모셔졌습니다. 또 아버지 원봉사의 복전을 빌며 특별히 불상과 탑을 만들어 대흥현 홍법사에도 모셨습니다.

 

이처럼 진나라와 본국을 다섯 차례 오가며 공덕을 쌓고 서원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황후 자신의 원불로 관음성상(觀音聖像) 한 분을 조성해 돌배에 실어 동국에 보내며 대신에게 명했습니다.

이 관음상은 배가 닿는 바로 그 자리에 봉안하도록 하여라.”

 

사신들은 명을 받고 동국으로 향했습니다. 배는 바다에 한 달간 표류하다가 불현듯 바람을 따라 낙안 땅의 단교길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을 지키는 병사들이 돌배를 수상히 여겨 쫓아오자, 그 돌배는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저절로 움직여 바다 깊은 곳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튿날, 옥과 땅의 처녀 성덕 아가씨가 홀로 바닷가를 거닐다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 멀리 구름 사이에서 작은 돌배 한 척이 떠오르더니, 마치 성덕 아가씨가 이끄는 것처럼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배가 마침내 해변에 닿자, 그 위에는 자비로 가득한 관음보살상이 앉아 있었습니다. 성덕 아가씨는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일어 땅에 엎드려 예를 올리고, 직접 관음상을 업어 옮겼습니다. 그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웠습니다.

 

아가씨는 낙안 바닷가에서 고향인 옥과 땅으로 향하며 열두 정자에서 쉬어갔습니다. 처음 쉰 곳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지만, 두 번째는 대추정(大棘亭), 세 번째는 새암정(泉亭)이라 불렀습니다. 네 번째는 작은 언덕 ()’ 위에 세워진 불휴정(佛休亭)이었고, 일곱 번째는 흥복정, 여덟 번째는 현정, 아홉 번째는 삽정, 열 번째는 구일정이었습니다. 여기서 담양의 추월산으로 갈지, 옥과현 설산으로 갈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관음상을 업고 구일정을 떠났습니다. 열한 번째 쉰 곳은 운교 마을 앞의 정자였습니다.

운교정을 떠난 성덕 아가씨는 숨이 턱에 닿을 만큼 고개가 가팔라지는 곳에 이르렀는데, 이 고개는 하늘에 닿는다 하여 하누재(天峙)’라 불렀습니다.

이백 리가 넘는 길을 걸어오면서 관음상을 업고도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했지만, 하누재에 이르자 갑자기 산처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아가씨는 관음상을 모실 만한 터가 가까워졌음을 직감하고, 고개를 넘어 그 자리에 발을 디뎠습니다. 바로 여기가 지금의 관음사 자리입니다.

성덕 아가씨의 원력으로 큰 절을 지어 관음보살을 봉안했고, 절의 이름은 관음사, 산 이름은 그녀의 이름을 따 성덕산이라 불렀습니다.

 

한편, 홍장의 아버지 원봉사는 딸이 떠난 이후 매일같이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성공 스님을 통해 홍장이 진나라의 황후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쁨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순간 천지가 환하게 밝아지고 모든 것이 찬란하게 빛나면서, 마침내 그는 오래도록 잃었던 시력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 각색되고 다듬어지면서,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심청전'으로 전해지게 됐습니다. 심청전에서는 심봉사와 딸의 이름이 서로 다르고, 심청이가 뱃사람에게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이 극적으로 그려져서 작품에 문학적 분위기가 더해집니다. 반면, 이 기록은 꾸밈없는 사서의 내용 그대로라서 원형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참고자료 : <韓國寺訓史料集> [네이버 지식백과] 시주하고 왕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