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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불교용어사전 (사유 – 사참)

by 도연스님입니다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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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사전 (사유 – 사참)

 

#사유(四維)---아래와 같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사방의 네 방위, 곧 서북ㆍ서남ㆍ동북ㆍ동남의 네 간방을 일컫는 말이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를 이른다.

 

#사유(四有)---윤회의 네 가지 과정. 중생이 살다가 죽어 다음의 어떤 생에 이르는 과정을 네 가지로 나눈 것.

#사유(死有) - 죽는 순간

#생유(生有) - 태어나는 순간, 즉 어떤 생이 결정되는 순간.

#본유(本有) - 생애를 누리는 기간, 어떤 생이 결정된 후부터 죽을 때까지.

#중유(中有) - 죽어서 다음의 어떤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

 

#사의지(四依地)---초기 불교시대에 출가자가 닦아야할 네 가지 법. 즉 분소의(糞掃衣)를 입는 것, 항상 밥을 빌어먹는 것, 나무아래서 정좌(靜坐)하는 것, 부란약(腐爛藥 ; 소의 오줌으로 만든 허술한 약)을 쓰는 것 등이었다.

※분소의(糞掃衣)---세속 사람들이 버린 헌 옷을 주워서 빨아 지은 가사(袈裟). 똥 걸레 옷이란 뜻.

 

 

#사자의서(死者의書)---사후의 세계에 관한 안내서로서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와 티베트 밀교의 <사자의 서>가 유명하다. ‘사자의 서(死者의 書)’는 내세관으로 부활 또는 윤회를 믿는 데서 출발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死者의 書)>는 1200년 전인 8세기에 티베트 밀교의 대가였던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 연꽃 위에서 태어난 자라는 의미)가 저술한 100여권의 책 중의 한권이다. 이 책은 그 후 매장 돼 있다가 ‘테르퇸’이라 불리는 전문 발굴자인 릭진 카르마 링파에 의해 티베트 북부 지방의 한 동굴에서 발견됐다. 이후 이 책은 필사본과 목판본으로 티베트지역에 전해지다가 1919년 영국인 에반스 웬츠(W,Y. Evans Wentz)에 의해 발견돼, <티베트 사자의 서(the Tibetian book of the death)>라는 제목으로 발행돼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장례 후 49제를 지내는 이유도 모두 이에서 유래한다.

 

#4전도(顚倒)---어떤 판단을 할 때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오해하는 일 4가지를 말한다.

#상전도(常顚倒) - 무상한 세상을 영원한 듯이 생각하는 것.

#낙전도(樂顚倒) - 괴로운 인생을 즐겁다고 여기는 것.

#정전도(淨顚倒) -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잘못 아는 것.

#아전도(我顚倒) - 무아인 존재를 내 것이라 착각하는 것.

 

#4정근(四正勤)---사정단(四正斷)또는 사정승(四正勝)이라고도 하는데, 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惡法)을 멀리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네 가지 법.,

#율의단(律儀斷) -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단단(斷斷) - 이미 일어난 불선법(不善法)을 모두 제거하는 것.

#수호단(隨護斷) -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善法)들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수단(修斷) - 이미 일어난 선법(善法)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고 더욱 증장시키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쓰는 것.

그런데 사정근은 해탈열반과 향상에 도움이 되는 선법과 그렇지 못한 불선법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전제되고 있다. 그리하여 사정근 수행을 해야 해탈열반과 향상에 도움이 되는 선법과 그렇지 못한 불선법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청정도론(淸淨道論)>에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특별히 믿음과 지혜의 균등함을 권한다. 믿음이 강하고 지혜가 약한 자는 미신이 되고, 근거 없이 믿는다. 지혜가 강하고 믿음이 약한 자는 교활한 쪽으로 치우친다. 약으로 인해 생긴 병처럼 치료하기 어렵다. 두 가지 모두 균형을 이룸으로써 믿을 만한 것을 믿는다. 집중은 게으름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삼매가 강하고 노력이 부족한 사람은 게으름에 의해 압도된다. 노력은 들뜸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정진이 강하고 삼매가 약한 자는 들뜸에 의해 압도된다. 집중이 노력과 함께 짝이 될 때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노력이 집중과 함께 짝이 될 때 들뜸에 빠지지 않는다.”--->정근(正勤) 참조.

 

 

#4종열반(四種涅槃)---열반에 대해서는 2열반 ․ 3열반 ․ 4종 열반 등의 분류가 있으나 유식계의 4열반관(四涅槃觀)이 가장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성청정열반(子城淸淨涅槃) - 본래청정열반(本來淸淨涅槃)이라 하기도하고, 성정열반(性情涅槃)이라 하기도하면서 이는 삼라만상 제법 모두의 본래상(本來相)은 진여적정(眞如寂靜)의 이체(理體)로 곧 진여(眞如)를 의미한다. 즉, 인간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고 진여성(眞如性)과 불성(佛性)이 항상 청정하기 때문에 열반의 의미를 본래부터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 여의(餘依)는 번뇌가 마음에 의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번뇌는 끊어졌지만 아직 육체는 있기 때문에 ‘나머지 의지할 것[여의(餘依)]’이 있다는 뜻에서 유여의열반이라 한다. 아무리 정신적 의미에서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 얻어진 열반은 불완전한 것[유여열반]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생존에 얻은 열반을 유여의열반이라 했다.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 번뇌와 육신이 모두 소멸된 죽음의 상태로서 사후에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죽으면 육체의 제약에서도 벗어나 완전한 열반에 이른다 해서 무여열반이라 한다. 그러니 번뇌장(煩惱障)을 끊고 생사괴로움을 여의어 얻은 진여경계의 열반이다. 이는 이숙(異熟)의 고과(苦果)인 현재의 몸까지 멸해 없어져 고(苦)가 의지할 바가 없는 열반이다.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 - 번뇌를 끊고 청정한 지혜를 얻어, 생사(生死)에도 열반에도 집착하지 않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상태로서, 무주처열반은 번뇌장뿐만 아니라 소지장(所知障)을 끊고 얻는 열반이다. 소지장마저 끊었으므로 생사와 열반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는 깊은 지혜를 얻게 되고, 대비(大悲)가 있으므로 열반에 머무르지 않고 생사계의 중생을 교화하며, 대지(大智)가 있어 생사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히 미계(迷界)를 여의었으므로 무주처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4주(四洲)---수미산(Sumeru)을 중심으로 4개의 큰 섬이 있는데, 그 이름은 각각 방위에 따라 동승신주(東勝身州), 남염부주((南閻浮州), 서우화주(西牛貨州), 북구로주(北俱盧州)라 하고, 우리가 사는(사람이 사는) 세계는 남염부주이다.

 

#4시(四智)---유식철학에서 말하는 사지(四智)는 번뇌에 오염된 팔식(八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네 가지 청정한 지혜.

#대원경지(大圓鏡智) - 오염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아뢰야식에서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함.

#평등성지(平等性智) - 오염된 말나식(末那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떠나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을 일으킴으로 이와 같이 말함.

#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제육식(第六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모든 현상을 잘 관찰해 자유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므로 이와 같이 말함.

#성소작지(成所作智) - 오염된 전오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 이 지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을 모두 성취함으로 이와 같이 말함.

 

#사참(事懺)---참회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이참(理懺)이고 하나는 사참이다. 사참은 우리가 몸과 말과 생각(身 ․ 口 ․ 意 삼업)으로 지은 죄업을 불보살의 가피와 예불 등을 통해, 즉 행동을 통해 불보살에게 참회하는 것이다. 이참은 본래의 마음자리에서 볼 때 모든 죄가 본래 자성이 없다는 이치를 꿰뚫어 봄으로써 참회를 이루는 것이다. 결국 사참이란 밖으로 참회하는 것으로 죄를 범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인정받는 것이고, 이참은 죄란 본래부터 없다는 것을 관조해 없애는 것이다.

이참과 사참 두 참법 중, 사참은 이참이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될 때 온전히 이루어지고, 이참 또한 사참이 없으면 공중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곧 사참과 이참은 결코 둘이 아니다.--->이참(理懺)과 사참(事懺)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