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 사명대사 유정의 신통
(내용을 자연스럽게 수정했습니다)
• 주제 : 기이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지역 : 경상도
• 첨부파일 :

사명대사 유정이 조선의 수신사 자격으로 일본에 건너가자, 일본 측은 그의 기세를 꺾기 위해 여러 가지 시험을 준비했다. 유정의 학문과 도술이 깊다는 소문을 들은 일본인들은, 그가 지나갈 길목 양편에 금과 은으로 장식된 병풍을 세우고, 자신들이 지은 시문을 병풍마다 써 놓았다.
유정은 그 병풍의 글들을 지나가며 한 번 훑어본 뒤 모두 외워버렸다. 관사에 도착하자 일본인들이 병풍에 적힌 글들을 물었고, 그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더욱 극단적인 시험을 준비했다.
달군 쇠말 위에 유정을 앉히고, 불타는 화덕 속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나 이내 하늘에서 갑작스레 비가 내려 불길을 단번에 꺼뜨려 버렸다.
또 무쇠 풀무의 불길 속에 앉혔지만, 유정은 끄떡없었고 오히려 수염 끝에 고드름이 달릴 정도로 주변이 얼어붙었다.
그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희 섬나라에 나무가 많다더니, 어찌하여 이토록 찬 방에서 사람을 괴롭히는가?”
일본인들은 이 외에도 온갖 방법으로 유정을 시험하고 괴롭혔으나, 그는 도술로 모두 막아내어 조금도 다치는 일이 없었다. 마침내 일본 국왕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크게 놀라 그를 ‘선인’ 또는 ‘살아있는 부처’라 부르며 극진히 모셨다.
그 후 일본은 유정을 가장 값비싼 금으로 만든 가마에 태워 이동시켰고,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조차 그 금가마에 모시고 갈 정도였다.
이렇게 일본을 감복시킨 유정은 왜왕에게 두 나라의 우호와 평화를 약속하게 했고, 아울러 일본에 억류된 조선인 포로들의 송환을 요청하였다. 그 결과 유정은 조선을 떠날 때 우리 동포 남녀 3,000여 명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었다.
또한 《임진록》과 《사한당 고사》 등의 기록에 따르면, 유정은 일본의 만행에 대한 책임으로 왜왕에게 해마다 소녀의 껍질 300장과 15~16세 소년의 고환 3말을 조선에 바칠 것을 서약하게 했다는 전승도 있다.
이처럼 유정은 일본에서 도술과 지혜로 그들을 굴복시키고, 많은 전리품과 함께 수많은 동포를 데리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동래에 도착했을 때, 당시 동래부사 송상윤은 수신사가 승려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를 깔보아 병을 핑계로 영접하지 않았다. 원래 부사는 사신을 맞이하는 것이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송상윤은 병든 척하며 마중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정이 확인해 보니, 송상윤은 병이 아니라 기생들과 어울려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하필 그날은 국가의 기념일이기도 했다.
이에 분노한 유정은 국법에 따라 동래부사의 목을 베었고, 즉시 왕에게 그 사실을 상소로 알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명대사 유정의 신통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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