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사전 (겁 – 결사)

#겁(劫)---산스크리트어 ‘kalpa’의 음역인 겁파(劫波)의 약칭으로, 장시(長時)‧대시(大時)라 의역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시간 개념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뜻하는데,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동안이란 뜻으로 매우 길고 오랜 시간을 이르는 말이다. 본래 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계의 4억 3200만 년을 1겁이라 했다.
#게송(偈頌)---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할 경우거나 중요한 교리를 서술할 때 운문으로 쓴 것을 게송이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운문으로 표현한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고기송(孤起頌)과 중송(重頌)이다.
고기송은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도 하는데, 산문은 없고 경문 전체가 운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6장 423게송으로 이루어진 <법구경(法句經)>이다. 그리고 중송은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설한 것이다. 여기서 ‘중(重)’은 무겁다는 뜻이 아니고 ‘거듭’을 의미 한다. 즉 본론의 산문 내용을 좀 더 자상하고 미세하게 표현해 산문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내용을 중복해서 운문체로 부연 설명하는 것이다. 중송은 기야(祇夜)라고도 한다.
게송은 바로 게타(偈陀)의 게(偈)와 중송(重頌)의 송(頌)을 따서 게송(偈頌)이라 하게 된 것이라서 게타(고기송)이든 중송이든 모두 게송이라 일컫는 것이 일반적이다.---→가타(伽陀), 고기송(孤起頌), 중송(重頌) 참조.
#게타(偈陀)---가타(Gatha, 伽陀)와 같은 말임.---→가타(伽陀) 참조.
#격외도리(格外道理)---언어의 격식이나 관례를 초월한 말이지만 진리를 담고 있음을 말한다. 즉, 설정된 언어의 뜻에 구애받지 않고 부정과 긍정 양 날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언어의 격식을 뛰어넘는 진리를 말한다.
말이 있으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이 뜨고, 옳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쁘다고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틀이 잡히고 논리가 생기고 문법이 생기고 격식이 생겨, 격식을 벗어나면 틀렸다 그리고 아니다 하는 갈등이 생긴다. 때문에 진리는 옳다 혹은 그르다 하는 이분법을 뛰어넘는 곳에 있다는 말이다.
#격외선(格外禪)---가르침 밖에 따로 전한 마음의 법리(法理)인 교외별전(敎外別傳)과 격식과 단계를 벗어난 수행의 이치인 격외도리(格外道理), 그리고 글자에 구애받지 않은 불립문자(不立文字), 이러함을 바탕으로 한 선(禪)을 줄여서 격외선이라 한다.
6조 혜능(慧能) 계통의 격외선을 남종선(南宗禪)이라 하는데, 이 남종의 격외선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받아들인 이는 신라 말의 도의(道義)선사였으며, 그를 이어 많은 선사가 격외의 선법(禪法)을 중국에서 받아들여 와서 산문(山門)을 열었다. 그리하여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아홉 산문이 이루어졌으므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일컬었고, 그 이후는 물론 지금도 조계종(曹溪宗)을 비롯한 한국불교의 참선은 이 격외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격의불교(格義佛敎)---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됐을 당시 중국인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은 불교교리가 많았다. 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유교나 도교 등 중국 고유의 사상으로부터 유사한 개념이나 용어를 차용해 설명한 편법을 가리켜 격의(格義)라 했다. 이렇게 기존의 자국 언어를 빌어 이질적인 문화를 방편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격의라 했는데, 불교 도입 초기인 위진시대(魏晋時代, 220-420)에 나타났던 불교교리의 이해 및 연구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불교교의의 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을 가져와서 오호16국 시대에 이르러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과 그의 제자 승조(僧肇, 384~414)에 의해 극복돼 나갔다.
#견도(見道, 산스크리트어 darśana-mārga)---초기불교에 있어서 성문과 보살로서의 수행단계인 삼도(三道)의 첫 단계이다. 번뇌가 없는 청정한 지혜에 의해 4제(四諦)와 12연기(12緣起)의 도리를 깨닫는 수행과정을 말한다. 4제를 명료하게 관찰해 견혹(見惑)을 끊는 단계로서 경전에서는 ‘이것이 고(苦)임을 알고, 이것이 고의 집(集)임을 알고, 이것이 고의 멸(滅)임을 알고, 이것이 고의 멸에 이르게 하는 도(道)임을 안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무루(無漏)의 바른 지혜를 발휘해 4제와 같은 진리를 비로소 통찰하는 단계이므로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예류향(預流向), 유식설에서는 통달위(通達位), 보살의 수행 단계에서는 십지(十地) 가운데 초지(初地)에 해당하며, 이 이상의 단계에 이른 사람을 보통 성자라고 한다.---삼도(三道) 참조.
※삼도(三道)---견도(見道)와 수도(修道)와 무학도(無學道)임.
※예류향(預流向)---초기 불교 성문(聲聞)의 수행 단계인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의 사과(四果) 중 수다원을 예류향이라 함.
※통달위(通達位)---유식설(唯識說)에서, 수행의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 수도 5위(修道5位) 중의 셋째 단계. 번뇌가 없는 지혜로써 우주의 진리를 체득하는 단계임.
※10지(十地)---천태종에는 보살 수행의 단계로서 통교(通敎) 10지(地)를 말하는데, 보살이 부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10단계를 말한다. <화엄경>에서 천명한 52위 중 제41에서 제50까지의 10지이다.
#견성(見性)---본래의 자기 면목, 즉 본시 그대로의 자기 본성을 본다는 뜻이다. 본연의 자기는 항상 존재하는데 어째서 보지 못할까, 생각에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구름이 계속 피어올라서 하늘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흐림을 걷어내고 본성을 보는 것이 견성이요, 깨달음이다. 즉 견성이란 본연의 자기를 봄이요, 곧 깨달음을 일컬음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인간이 본성을 깨치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말.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밝고 바르게 보아 앎으로써 정각(正覺)을 이루면 성불한다는 뜻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너희들의 본성은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이니,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것을 일컬어 정견(正見)이라 하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것을 일컬어 진지(眞知)라 한다. 푸르고 누렇고, 길고 짧은 것도 없으며, 오직 본원(本源)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과 깨달음의 본체가 원만하고 밝다는 것을 보기만 하면, 이것을 일컬어 '본성을 보아 부처를 이루었다[견성성불]라고 한다”.
즉 자기의 본성은 원래 형체도 없고 근본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더 이상 불타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견성성불’이라 하는 것이다. 선종(禪宗)에서는 모든 사람이 불타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독경, 좌선, 예불, 계율과 같은 수행의 형식을 중요시하지 않으며, 단지 마음을 닦아서 자기의 본성을 보아 부처를 이룰 것을 주장한다.---→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참조.
#견지(見地)---일반사회에서는 어떤 사물을 판단하거나 관찰하는 입장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수행의 기틀이 잡힌 불퇴전(不退轉)의 지위를 일컫는다. 즉, 삼계(三界)의 견혹(見惑)을 끊어 다시 범부의 상태로 후퇴하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그런데 천태종에는 보살 수행의 단계로서 통교(通敎) 10지(地)를 말하는데, 통교의 10지는 초발심(初發心)의 단계에서 부처의 지위까지를 열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그 천태종 통교 10지 중, 제4위가 견지이다.---→‘통교(通敎) 10 지(地)’ 참조.
※통교(通敎)---천태종의 교판(敎判)에서, 보살의 삼승인 성문․연각․보살에게 공통되는 가르침과 함께 받는 법을 말하는데, 10지(地)가 있다.
#견취견(見取見)---5견(五見=오리사/五利使)의 하나. 그릇된 견해를 바른 것으로 간주해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 졸렬한 지견(知見)을 잘못 믿고 스스로 훌륭한 견해라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오견(五見), 견혹(見惑) 참조.
#견혹(見惑)---2혹(二惑)의 하나로 사혹(思惑)에 대칭되는 말. ‘혹(惑)’이란 마음의 미혹, 번뇌를 의미한다. 그리고 견혹이란 사물에 집착하는 망상으로 일어나는 번뇌, 혹은 그릇된 도리를 분별함으로써 일으키는 아견(我見) 변견(邊見) 따위, 오견(五見)으로서 불교의 진리를 알지 못해 생기는 이론적인 번뇌이며, 사상적인 미혹이고, 후천적 번뇌이다. 이에 비해 사혹이란 세간의 사물을 생각해서 일으키는 탐‧진‧치 따위의 습관적으로 사물에 대해 애착을 하는 선천적 번뇌이다. 헌데 5견은 예리(銳利)한 번뇌이므로 이사(利使), 즉 5리사(5利使)라고도 한다.---→오견(五見) 참조.
#결가부좌(結跏趺坐)---앉는 방법의 하나로서, 두 다리를 서로 교차시켜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 줄여서 가부좌(跏趺坐)‧결좌(結坐)라고도 한다. 앉는 방법은 항마좌와 길상좌의 2가지가 있다.
항마좌(降魔坐)---먼저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 두 발바닥이 모두 위로 향하게 하며, 손도 오른손을 밑에 두고 왼손을 위에 올려놓는다. 이는 천태종(天台宗)이나 선종(禪宗)과 같은 현교(顯敎)에서 많이 사용하며, 요가의 기본자세이다.
길상좌(吉祥坐)---먼저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 두 발바닥이 모두 위로 향하게 하며, 손도 왼손을 밑에 두고 오른손을 위에 올려놓는다. 길상좌는 밀교(密敎)에서 많이 사용되며, 연화좌(蓮華坐)라고도 한다.
#결사(結使)---여기서 ‘사(使)’란 번뇌란 의미이다. 번뇌라는 놈은 우리 마음속에 꽁꽁 맺혀 있다. 그 맺힌 것들이 우리의 행동을 방해하며 복잡하고 불편한 행위로 이끌어간다. 그런 번뇌의 모습을 ‘결사(結使)’라 한다.

#결사(結社)---불교의 혁신운동을 말함.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는 운동은 시대마다 있었으나 특히 고려 때 태동한 운동을 결사(結社)라 했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결탁해 세속의 명예를 얻으려는 승려가 많았다. 이에 몇몇 뜻있는 승려들이 모여 혁신운동을 시작한 것이 그 유래이다.
그 중에서도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지눌은 수선사(修禪社 : 지금의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문>을 쓰고 세속화된 호국‧기복‧미신 불교를 타파하고, 타락한 형식 불교를 척결, 정법불교와 수행불교를 주창했다. 무신(武臣)들의 난에 의해 정치가 혼란해지고, 부패한 승려들에 의해 교단이 타락해갈 때 일어난 혁신운동이었다.
한편 지눌과 비슷한 시기에 요세(了世)는 강진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를 중심으로 무신들의 난 이후 혼란한 사회와 불교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촉구한 신앙결사로 백련결사(百蓮結社)운동을 통해 천태종을 중흥시켰다.
'불교용어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불교용어사전 (공안 – 관문) (4) | 2025.08.24 |
|---|---|
| 불교용어사전 (고골관 – 공성) (4) | 2025.08.23 |
| 불교용어사전 (결제 – 고고) (3) | 2025.08.22 |
| 불교용어사전 (감로 – 건혜) (6) | 2025.08.20 |
| 불교용어사전 (가관 - 가타) (6) | 2025.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