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사전 (고골관 – 공성)

#고골관(枯骨觀)---관법수행(觀法修行)의 하나. 오정심관(五停心觀) 중의 부정관(不淨觀)과 관계 깊음. 백골관(白骨觀) 혹은 골상관(骨想觀)이라고도 한다. 고골관이란 앙상하게 뼈만 남기고 썩어버리는 시체의 모습을 관함으로써 욕망을 벗어나 인생의 무상(無常)을 터득하고자 하는 수행 방법이다. 죽음 뒤에 남는 하얀 뼈, 즉 백골을 떠올리며 자기 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부정관(不淨觀) 참조.
#고기송(孤起頌)---산스크리트어 Gatha를 한역한 말, 음역해서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도 한다.---→가타 (伽陀), 게송(偈頌) 참조.
#고두례(叩頭禮)---머리(頭)를 조아린다(叩)는 뜻이다. 고두배(叩頭拜) 또는 유원반배(唯願半拜)라고도 한다. 아무리 무수히 절을 한다 해도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예경의 뜻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삼배 뿐 아니라 108배를 비롯해 모든 절의 마지막 절 끝에 머리를 땅에 다시 한 번 조아리는 것을 ‘고두(叩頭)의 예’라 한다. 이는 자신의 발원(發願)을 빈다 해서 유원반배(唯願半拜)라고도 하는데, 무수히 예경하고픈 간절한 심정을 여기서 마치게 되는 아쉬움을 표하는 예법이고, 지극한 존경심에 대한 여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께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고싱가살라Gosingasala숲---부처님 생존 당시 여러 수행자들이 수행을 했던 성스러운 살라(Sala)나무 숲을 이른다.
어느 날 세존의 고명한 직제자들이 함께 고싱가 살라 숲의 동산에 머물렀다. 이때 샤리푸타(Sāriputta/사리불)가 아난다, 레와따, 아누룻다, 마하가섭, 마하목련 존자에게 “고싱가 살라 숲은 아름답습니다. 밤이면 달빛이 밝고 살라 꽃이 만개해 마치 천상의 향기가 두루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 고싱가 살라 숲을 더 빛나게 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제자들이 각기 나름의 답을 말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세존께 가서 누구 말이 옳은지 여쭈어 보았다. “세존이시여, 누가 가장 잘 말했습니까?” “샤리푸타여, 그대들 모두가 다 각자의 방법에 따라 잘 말했다. 이제 어떤 비구가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하는지에 대한 나의 말을 들어라. 샤리푸타여, 여기 비구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앉아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그는 ‘취착이 없어져서 내 마음이 번뇌에서 해탈할 때까지 이 가부좌를 풀지 않으리라.’ 라고 결심한다. 샤리푸타여, 이런 비구가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한다.” 라고 세존께서 설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이 일화는 수행자의 자세, 마음 지키기 등에 관해서 세상을 빛내는 사람은 특별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보다도 일상생활의 매 순간 마음을 다해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법문이다.---이상의 내용은 맛지마니까야의 <마하 고싱가 경 (Mahagosingasalasutta)>에 실려 있음.
#고존숙(古尊宿)---고(古)와 존(尊)은 모두 경어. 숙은 노숙(老宿)이란 말. 오랜 수행 경력을 가진 선덕(禪德)에 대한 존칭. 선문(禪門)의 위대한 선승에 대한 존칭. 장로(長老)ㆍ원로(元老)와 같은 말.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사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은 무심선(無心禪)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 인물로 평가 된다. 그는 30여 년간 지주(池州) 남전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밭을 갈면서 은둔생활을 하고, 세상의 시비와 사상의 추구마저 잊어버리는 무심선(無心禪)을 터득함으로써 훗날 선승들에게 고존숙(古尊宿)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고행(苦行)---고행은 선정(禪定)과 함께 고대인도 종교가들이 행하던 보편적인 수행방법이다. 불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이니교의 수행자는 대단한 고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이니교에서는 육체를 철저히 괴롭혀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킴으로써 영혼이 순수하게 돼 완전한 해탈을 얻을 수가 있다고 믿었다.
석존은 주로 마음을 제어하는 고행, 호흡을 중지하는 고행, 단식에 의한 고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석존은 뼈와 가죽만 남았고, 눈이 움푹 들어갔으며, 피부는 검게 말라버려 마치 해골처럼 됐다고 한다. 간다라미술 조각품에 있는 유명한 ‘석존의 고행상’은 그 당시 석존의 모습을 상상해 작품화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 깨닫고, 이것을 버리고 고락 양면을 떠난 심신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했다.
#공(空, sunyata)---‘공(空)’이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 ‘sunya’(텅 빈)라는 형용사나 ‘sunyata’(공한 것)이라는 명사의 번역어이다.
공의 개념은 특수하다. 공(空)사상은 초기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을 재해석함으로써 붓다의 기본 입장을 보다 명확하게 밝힌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따라서 공(空)사상은 불교를 사상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철학사상이라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공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말로서 공이라는 말은 인연(因緣)이라는 소리이다. 용수보살(나가르주나)은 그의 저서 <중론(中論)>에서 인연으로 생겨난[衆因緣生] 모든 것을 공하다고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사물들과 서로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존재이므로, 그 모양이나 형태, 또는 그 성질이 전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혀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어서 그 스스로의 자아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무아(無我)라고 하며, 자아(自我)가 없는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그것을 공(空)이라고 한다. 이 말을 불교에서는 어려운 말을 써서 자성(自性)이 없다고 한다. 실체를 자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체가 없다는 말을 무자성(無自性)이라 한다. 무자성의 내용이 연기라는 이야기이다. 이 무자성이 바로 공이다. 불교의 공사상은 인간의 언어논리에 의한 판별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공견(空見)---공(空)에 집착하는, 공에 사로잡힌 그릇된 견해. 근본적으로 공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므로 공병(空病)과 같은 말이다.---→공병(空病) 참조.
#공공적적(空空寂寂)---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공공적적해 찾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준말 - 공적(空寂)
우주 만물이 모두 실체가 없고, 비어 있어 불변하는 것이 없다는 말.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마음이 텅 비어 매우 고요하다는 말.
번뇌나 집착이 없이 무아무심(無我無心)이라는 뜻.
청화(淸華)스님은 우주에 형상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모두 그 실체가 공무(空無)해 아무것도 분별할 것이 없으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여의어라 말씀하셨다. 그것이 곧 공공적적(空空寂寂)이다.---→공적(空寂) 참조.
#공관(空觀)---공관이란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이 없고 고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리를 관상(觀想)하는 수행법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천태종 입장에서는 관법(觀法)의 내용을 삼종으로 나누는데, 그 천태종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의 하나가 공관이다.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수많은 현상은 모두 인연소생(因緣所生-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김)에 따라 생긴 것으로, 그 실체가 없고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공적무상(空寂無相)이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이 없고, 고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리를 관상(觀想)하는 수행법을 일컫는다. 현 상계의 일체법은 다 실체가 없는 공이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물든 우리들의 번뇌 또한 그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이라고 관해 마음의 본바탕인 불성(佛性)을 깨닫고자 함을 말한다.---→일심삼관법(一心三觀法) 참조.
#공교(空敎)---불교철학을 세 단계의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삼시교판설(三時敎判說)이라 한다. 이 분류는 석존의 교설 중에서 유식학이 최상의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도 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 논사가 정립한 이론으로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 제3시 중도교(中道敎, 唯識敎)의 순서로 불법이 나타났다 는 주장이다.
제1시교---처음 초기로 제1시교 법문을 유교(有敎)라 한다, 우리 중생 차원에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모두 있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모두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의 범안(凡眼) 차원에서 알기 쉽게 하는 법문이 유교(有敎)이다.
제2시교---보다 높은 차원으로서 ‘일체가 다 공(空)이다. 중생이 보는 것은 다 망령된 것이고 일체가 공이요 무상이다’ 이러한 높은 차원에서 모두를 다 부정하는 단계, 이것이 공교(空敎)이다. <반야경>‧<금강경> 등의 사상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제3시교---제3시교는 바로 중도교(中道敎)이다. 제1시교와 같이 너와 나의 실재를 고집하는 편견과 제2시교에서 말하는 바, 일체 만법이 무상하다고 하는 공(空)의 한 면만을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부정해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은 유(有)의 개념과 공(空)의 개념을 초극한 중도의 묘한 이치, 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불성(佛性) 경계를 말씀하신 가르침이다. 공의 참뜻을 중도(中道)라 해 그 중도를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제3시의 중도교(中道敎)는 유(有)와 공(空)을 동시에 드러내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해심밀경>‧<화엄경>의 가르침이다.
#공무변처(空無邊處, akasanancayatana)---사무색처(四無色處)의 하나. akasa(허공)+ananca(끝없음)+ayatana(장소, 處)로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무색계(無色界) 제1천(天)의 경지. 물질인 이 육신을 싫어하고 가없는 허공의 자재(自在)함을 기뻐하며, 공이 가없다는 이치를 알고 수행해 태어나는 곳이므로 공무변처라 함.---→사무색처(四無色處) 참조.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사무색정(四無色定)의 하나. 가없는 허공을 생각에 떠올리면서 염하는 정신통일. 공무변처천에 들어가기 위해 닦고 익히는 선정을 일컫는다.---사무색정(四無色定) 참조.
#공병(空病)---공병이란 모든 사물이 공하다고 하는 관념에 집착해 허무주의적인 경향에 빠져버리는 것을 말한다. 공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로만 이해하는 것은 공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처음 공의 이론이 성립되고, 그 후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이런 공의 교리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공견(空見)에 빠지게 됐다. 이를테면 모든 것은 공이다 해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허무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던 것이다. 이것을 공견(空見) 혹은 공병(空病)이라고 하는데, 공사상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공은 객관적 세계를 부정하는 절대무(絶對無)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특히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물질적인 현상과 공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떠날 수 없는 상관관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사물의 본질이 공으로 파악된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공은 그 파악되는 사물을 떠나서도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혀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 스스로의 자아가 없어서 무아(無我)라고 하고, 자아(自我)가 없는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그것을 공(空)이라고 하는 것이다.---→공견(空見) 참조.

#공성(空性, 산스크리트어 sunyata)---공(空)의 상태. 비어 있고, 연기(緣起)하고 있는 것을 공성(空性)이라고 말한다. 즉, 공성이란 변화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것[공성]은 의존된 가명(假名)이며, 그것[공성]은 실로 중(中)의 실천[中道]이다.
무릇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는데 이것은 공성, 즉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공성(空性)은 무상(無常), 연기(緣起), 모든 존재의 참모습, 진여실상(眞如實相), 불성(佛性), 중도(中道) 등 여러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다.
본래부터 굳어있고 고정된 것이라면 어떤 것도 새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성이기 때문에 거룩한 마음을 내어 해탈도, 성불도 가능하고, 공성이기 때문에 지금은 어려우나 내일의 희망이 있고, 공성은 호(好) 불호(不好)에 관계없이 만법 (萬法)에 평등한 것이다. 마치 텅 빈 거울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그대로 비춰주는 것과 같다. 이러하므로 마음공부 자체가 곧 수행이며, 마음공부의 목표는 마음의 본질인 공성(空性)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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